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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뮤지컬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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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베스트셀러에 등극하며 열풍을 몰고 왔던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성공한 기성세대의 현실감 없는 조언으로 여겨지는 시대이다. 아픔을 청춘의 특권인 것처럼 그럴싸하게 포장한 말로는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뮤지컬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는 방황하는 청춘의 적나라한 단면을 보여주고, 현실적인 위로를 건넨다.

작품의 포스터 속 두 인물 사이에서 느껴지는 긴장감, 야구 경기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무대는 이 작품의 주제가 ‘야구’인가? 라는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그러나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는 야구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1994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우승의 주역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김건덕’과 ‘이승엽’. 두 사람은 귀국 후 많은 프로구단의 러브콜을 뒤로하고 대학진학을 선택한다. 하지만 예비 신입생 신분으로 합숙을 시작하며 경험한 대학생활은 상상과 달랐다. 불합리한 규율과 선배들의 폭언은 이들을 지치게 했고, 결국 두 사람은 ‘대학 떨어지기 프로젝트’를 계획한다. 그러나 불행은 어깨동무를 하고 찾아온다고 했던가. 빛나는 재능으로 승승장구할 것 같던 김건덕에게 불행이 몰려오고, 같은 꿈을 향해 달려가던 두 사람의 인생은 급속도로 달라지기 시작한다.

너에게빛의속도로간다_리허설_025극 중 19살 김건덕은 ‘언젠가는 빛의 속도로 던질지도 모르는 투수’라는 극찬을 받는 미래가 촉망한 야구선수다. 여느 고등학생처럼 친구가 인생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풋풋한 사랑을 꿈꾸기도 하는 열정 가득한 소년이기도 하다. 그러나 소중한 친구들에게 절대 털어 놓을 수 없는 상처가 있다. 바로 아버지이다. 선원들을 노예처럼 부리고 폭력을 일삼는 새우 잡이 배 선장 아버지는 건덕의 가장 큰 상처이다. 어쩌면 건덕이 ‘대학 떨어지기 프로젝트’를 결심한 것은 대학에서 만난 폭력적인 선배들에게서 아버지를 떠올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건덕에게 야구는 그토록 증오하는 아버지와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만들어 줄 단 하나의 희망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건덕이 숨겨왔던 아버지의 정체를 친구들에게 들키는 순간은 감추기 급급해 덧나는 줄도 몰랐던 상처가 곪아 터지는 순간이 되었다. 아버지를 증오했던 만큼 수치심을 느꼈을 것이다. 현실을 부정하고 도피하려는 건덕을 붙잡아 주기엔 승엽과 효정 역시 너무 어린 나이었다. 단 하나의 탈출구였던 야구마저 부상으로 선수 생활의 위기를 맞게 되자 건덕은 깊은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든다. 그 고통의 무게를 알기에 그 누구도 섣부른 위로를 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을 포기한 것 같은 친구를 지켜보던 승엽은 ‘넌 항상 불완전 연소를 하고 있었다’는 말로 건덕의 자존심을 자극한다. 환경을 탓하지 말고 노력으로 상황을 극복하라는 의도였을 것이다. 나름의 방식으로 건덕을 위로한 것이다. 이때 절정의 치닫는 음악은 건덕의 고통스러운 비명처럼 들리기도 한다.

너에게빛의속도로간다_리허설_045‘9회말 2아웃’에서 마주 친 승엽과 건덕의 정면승부. 이 승부는 어느 학교가 결승전에 진출할지, 최고의 창과 방패인 건덕과 승엽 중 누가 이길지 결정하는 것만이 아니다. 극복과 절망의 갈림길에 선 건덕의 인생을 결정하는 승부이기도 하다. 흔히 기회와 위기가 동시에 찾아온 순간을 야구의 ‘9회말 2아웃’ 상황에 비유한다. ‘9회말 2아웃’ 넘버를 통해 이 작품은 야구라는 소재와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주제의 절묘한 조합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재능과 불행을 동시에 가졌던 인간 ‘김건덕’의 이야기를 통해 관객들에게 ‘이 모든 불행은 네 잘못이 아니다’ 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건덕은 가장 힘든 시기,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누구에게도 듣지 못했지만 힘든 시기를 견뎌내고 있는 누군가가 이 공연을 보고 있다면 위로가 되어 주겠노라 손을 내민다.

뮤지컬 <완득이>를 통해 호흡을 맞췄던 김명환 작/연출과 박기영 음악감독이 만든 뮤지컬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는 2014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뮤지컬 육성사업 우수공연 선정 되었다. 김건덕 역에 배우 안재영, 이승엽 역에 배우 김영철, 윤효정 역에 배우 김민주 배우가 열연하는 이 작품은 대학로 아트원 씨어터 1관에서 오는 2월 8일까지 공연 된다.

글. 오은지 (ojang27@musicalpublic.com)

사진제공. 벨라뮤즈 마케팅 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