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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을 짊어진 영혼들의 노래 <노트르담 드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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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가장 ‘추하다’고 낙인찍었지만, 그 무엇보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하는 ‘사람’.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노틀담 성당의 벽에 새겨진 ‘숙명’이라는 단어를 보고 영감을 얻어 탄생시킨 고통에 가득 찬 영혼. 오랜 세월 노틀담 성당의 종지기로 책에서, 영화에서, 무대에서 다시 살아나는 콰지모도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각자가 짊어진 숙명에 때론 순응하고 맞서며 살아가는, 고통에 찬 영혼을 울리는 작품,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그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1482년의 노틀담은,
  사랑과 욕망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무대 위를 가득 채우는 다채로운 조명과 대사 없이 이어지는 50여곡의 넘버는 선택과 오해 속에 던져진 인물들의 복잡한 내면 심리를 섬세하게 드러낸다.

  집시로 평생 떠돌며 살아갈 운명을 짊어진 에스메랄다에게, 페뷔스를 향한 사랑은 자신의 인생을 전부 내어주는 헌신적이고 순수한 선택이다. 성직자로서의 본분과 한 여자를 향한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프롤로는, 상대와 자신마저 파괴하고 마는 일그러진 사랑의 단면을 보여준다. 현실적인 조건과 감정적인 끌림을 각각 가진 두 여인 사이에서 방황하는 페뷔스는, 두 가지가 합치 할 수 없는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에 내몰린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사랑하고 있는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할 수도, 보답을 바랄 수도 없는 콰지모도의 비극은, 가장 비천한 존재가 어떻게 가장 숭고하고 헌신적인 사랑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누구보다 흉측하고 많은 결함을 가진 콰지모도만이, 프롤로와 페뷔스는 닿을 수 없었던 사랑을 한다. 그는 신성 혹은 권력을 가진 자들로부터 완전히 배제되어 있는 존재이지만, 바로 그 박탈로 인해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깊은 외로움과 고통을 제대로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가 말하듯, 결코 행복해질 수도 없고 사랑을 가질 수도 없는 그만이, 삶과 죽음을 온전히 함께하는 사랑을 할 때, 허락되는 것은 오직 서로를 끌어안은 한 쌍의 유골일 뿐이다.

  디즈니의 노틀담은,
  애니메이션답게 화려한 영상과 경쾌하고도 서정적인 음악으로 콰지모도에 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뮤지컬 속에서 인물들이 짊어진 고통과 그로 인한 비극이 세밀하게 그려졌다면, 영화에서는 운명을 극복하는 과정 속에서의 ‘관계’에 주목한다.

  ‘반만 인간’이라는 뜻의 ‘과지모도’는 꼽추라는 신체적 결함과 흉측한 모습 때문에 ‘괴물’로 취급받으며 노틀담의 높은 종탑에 갇혀 지낸다. 그의 유일한 말동무는 성당 외벽에 서 있는 조각상들과 복종해야 하는 두려운 주인인 프롤로 뿐이다. 온전한 사람과 직접 만나 어울려 본 경험이 없는 그에게 종탑 아래 존재하는 사람들의 일상은 그저 아득하기만 하다. 이렇게 동료애나 사랑, 평범한 일상의 반복, 무엇보다 모든 질서와 규칙을 뒤엎는 ‘축제’에 직접 참여해보지 못한 콰지모도의 인생은 사회적 관계와 삶에 대한 경험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반만’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평생 숨어서 그저 사람들의 모습을 나무조각에 새기는 일밖에 할 수 없던 그에게, 에스메랄다의 등장은 사람으로서 맺는 최초의 사회적 교류이자, 그를 ‘진짜’ 인간답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에스메랄다를 구하는 과정에서 콰지모도는 페뷔스를 동료로 얻게 되고, 자신을 그토록 배척했던 사람들로부터 주목받는다. 불타는 노틀담의 모습과 이후 새로운 활기에 가득 찬 마을은, 구경꾼에 불과했던 콰지모도가 공동체의 참여자가 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렇게 영화는 단순히 공동체 안으로 편입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진정한 관계 맺음 속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콰지모도의 성장을 그려내고 있다.


 글. 이정민기자 (jmlart2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