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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소년> 박훈, 박민정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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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내던져진 세상 앞에서 우리는 수없이 깎이고 깨지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럼에도 ‘내가 그렇지 뭐’라는 자조 섞인 말로 자신을 폄하하거나, 묵묵히 참아내는 것을 최고의 미덕이라 여긴다. ‘어른’이라면 응당 그래야하는 것이기에.나 그리고 너, 혹은 어떤 이가 거치는 일련의 보편적인 과정에 대해 <유도소년>은 ‘공감’이라는 가장 큰 힘을 빌려 위로를 건넨다.몇 발짝 떨어져서 불길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 온기에 금세 언 몸이 녹는 것처럼,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전하는 수많은 땀과 뜨거운 열기는 고스란히 전해져 객석까지 안착한다.

여기에 채 여물지 않은 소년과 소녀가 전하는 풋내는, 미성숙했기에 더 위로와 응원을 받을 수 있었던 그 시절로 회귀시키며 상큼하면서도 따뜻한 잔향을 남긴다.봄볕이 완연한 어느 날. 박훈, 박민정 배우를 만나 <유도소년> 속 경찬과 화영이 전하는 울림과 여운을 음미해보았다.

 

초연을 하고 난 뒤, 재연을 준비하면서 달라진 점이 있는가

박훈 – 초연 때는 운동선수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려고 식단조절을 했었어요. 그런데 운동선수의 신체리듬이 1~2개월 한다고 만들어지지는 않더라고요. 긴 시간이 필요한 리듬이다 보니 차라리 잘 먹고 체력을 보충해 놓는 것이 연기에 유리하겠다는 걸 초연을 하고나서 깨달았어요. 그래서 요즘에는 무조건 다들 잘 챙겨먹으려 하고 있어요.

박민정 – 아무래도 다들 30대이다 보니까 거의 모든 배우들이 초연 이후로 몸이 많이 상했어요. 공연을 해보면서 ‘안 먹고는 정말 안 되겠구나’를 느끼다보니 이번에는 다들 정말 잘 챙겨 먹더라고요. 그런데도 힘들어하죠.

연이은 매진행렬과 많은 관심이 배우 입장에서는 행복하겠지만 한편으로 부담도 있을 것 같다

박민정 – 여러 사람들이나 매체를 통해서 관심을 받는 것에 대해서 부담은 없어요. 오히려 초연 후에 관심을 많이 받으면서 매니지먼트가 생긴 배우들도 있고 다들 좋은 일이 많이 생겨서 기분이 좋더라고요. 다만 객석이 꽉 차는 것에 익숙해지다 보니, 간혹 관객이 많이 없는 날에는 순간적으로 당황하게 되는 게 있더라고요.

박훈 – 배우들 단체 채팅방에 매일 얘기해요. 매진되는 것이 당연시되어 있는데, 우리가 정말 감사해야 한다. 잊지 말자고. 정말 감사한 일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요.

3 ★

박민정 배우는 ‘공연 배달서비스 간다’ 창단 멤버로서 소회가 더욱 남다를 것 같다    

박민정 – 유도소년을 하면서 ‘간다’를 많이 돌아보게 됐어요. 10년을 꾸준히 공연 해오는 동안 알음알음으로 대학로에서 ‘간다’라는 극단이 괜찮더라고 평가해주시는 정도였는데, 유도소년을 통해서 인지도가 확 올라가게 되니까 ‘간다’ 식구로서 굉장히 뿌듯하더라고요. 또 민준호 연출님이 마니아 적인 작품을 많이 하시는 편이라면 이재준 연출님은 보편적인 코드의 작품을 하시는 편이라 저희가 그 두 가지를 두루 보여 드릴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배우의 입장에서 봤을 때, 좋은 작품이라고 평가 받는 유도소년의 가장 큰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박민정 – 공연을 보신 지인들이 하시는 말이, 이 작품은 재미있기도 하지만 커튼콜 때 파이팅 하는 모습 같은 것들에서 좋은 에너지가 느껴진대요. 심지어 어떤 분은 ‘진짜 열심히 살아야겠구나’라는 생각까지 느끼고 가셨다더라고요. 그런 것들이 이 작품의 힘이 아닐까싶어요.

박훈 – 보신 분들이 얘기를 많이 하세요. 스토리 별거 없는데? 근데 좋다. 또 어떤 선배님들은 잊고 있던 것들이 가슴에서 끌어 올랐다는 말씀을 하셨고요. 저는 그게 굉장히 큰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다들 알고는 있죠. 초심에 대한 이야기들. 어찌 보면 너무나 진부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그것들을 무대화시키고 새로운 방식을 통해서 이야기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특별해지는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그런 것들에 환호하고 열광 해주시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요.

기억에 남는 실수나 에피소드가 있는가

박민정 – 민욱 역의 박성훈 배우랑 배드민턴 신을 할 때였는데, 민욱이 환상에서 깨어나서 허공에 헛스윙을 하는 게 있어요. 그때 라켓이 공중에서 확 부러진 거예요. 둘 다 웃음은 터졌고, 관객들도 웃으시더라고요. 일단 신은 진행해야하니까 “오빠 어떻게 해요. 이거 물어내요” 이렇게 애드리브를 했죠. 때마침 가방에 라켓이 하나 더 있어서 그걸 꺼내서 다시 진행을 했어요.

박훈 – 하루는 추리닝 때문에 실수했던 적이 있어요. 사실 마음은 좋은 것을 쓰고 싶지만, 대부분 제작 여건상 좋아 보이면서도 가격은 저렴한 걸 쓰게 되잖아요. 어느 날 추리닝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려는데 핸드폰은 없고 계속 발목에서 뭔가 걸리는 느낌만 들더라고요. 주머니에 구멍이 뚫렸던 걸 몰랐어요. 공연 중에 “내 전화기 어디 있게? 여기 있다.” 이런 애드리브를 하면서 발목까지 가있는 핸드폰을 꺼냈어요. 그때 다들 웃음이 터지시더라고요.

아령을 떨어뜨릴 때는 굉장히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박훈 – 제가 제일 위험해 보이게 하는 편이에요. 그 연기가 주는 긴장도 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무언가에 대해 자극이 되기 직전까지를 스릴 있어 하잖아요. 예를 들면, 사람들은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이 키스하는 것을 아름다워 하는 게 아니라 키스하기 직전까지의 그 느낌을 즐긴다고 하더라고요. 연기도 다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그 느낌이 와야 나중에 ‘왜 그러지?’라는 의문도 생길 것이고, 경찬이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정확한 합에 의해서 하고 있죠.

재연 캐스팅 발표당시 이번 시즌 ‘노안’은 자신이 아니라는 재치 있는 글을 SNS에 올리기도 했다. ‘동안’이라는 대사가 이제는 유도소년의 아이콘처럼 되었는데, 그 부분이 어느 정도는 의식이 되는 것인가

박훈 – 원래 대본에는 없던 애드리브이었어요. 초연 프레스콜 때, 연출님께서 분위기가 좀 풀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차용학 배우랑 시연하는 도중에 분위기 전환용으로 해봤던 거였어요. 그런데 그게 그렇게 웃음을 줄 거라고는 생각 못했죠. 저도 프레스콜 많이 해봤지만, 기자 분들이 그렇게 웃으시는 거 처음 봤거든요. 차용학 배우랑 그렇게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살짝 자존심도 상했고요. 이번에는 가장 어려보이는 박성훈 배우한테 박해수 배우가 하는 걸 보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사실 툭 하고 나온 말이기는 하지만, 지금은 그 대사가 아이콘처럼 돼서 유도소년에 하나의 제 흔적이 남은 것 같아서 기분은 좋아요.

11 ★

유도소년이 전반적으로 경찬의 슬럼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두 배우도 슬럼프가 있었는가

박민정 – 제일 큰 슬럼프는 대학 들어가서였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도 연기를 전공했지만, 그때는 배우는 것보다 주먹구구식으로 공연 올리느라 바빴어요. 그런데 막상 대학에 가서 연기를 체계적으로 배우다보니까 잘하는 친구들도 너무 많고, 연기하는 방식이나 접근하는 방식도 내가 몰랐던 것들이라 충격이 온 거죠. ‘연기를 그만둬야겠다’ 생각할 정도였고 수업도 듣기 싫어서 6개월 이상을 울면서 학교를 다녔어요. 다 그만두고 싶었는데,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 무언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참다보니까 다시 조금씩 돌아오기는 하더라고요. 그렇게 공연을 해오다보니 여기까지 왔어요. 하기 싫은 걸 하면서 억지로 다녔던 그 몇 개월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박훈 – 제가 유머러스한 역할로 데뷔를 하다보니까 주위에서 다들 그런 역할만 시키셨어요. 그런 캐릭터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제가 배우로서 가진 여러 색깔 중에 작은 한 부분인데 그것만 계속 사용되어지다보니 재미없어지고 지쳐가게 되더라고요. 내 가능성을 봐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걸 깎아먹는 느낌이었죠. ‘이렇게 흘러가다가 난 끝나겠구나’, ‘나는 여기까지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극장도 가기 싫어졌어요. 그래서 그때는 지각도 정말 많이 했어요. (정)상훈 형이 저한테 뭐라고 해주기 전까지는 정신 못 차리고 있었죠. 그 시간을 어렵게 넘기고 나니까 모범생들도 만나게 되고, 다른 것들을 해볼 수 있는 작품들을 만나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슬럼프가 없어진 것 같아요.

그래도 지금은 코믹한 역할과 진중한 역할의 조율이 잘 되고 있는 것 같다

박훈 – 그래서 저도 개인적으로 굉장히 만족해하고 있어요. 경찬이가 아닌 또 다른 색깔도 보여드리고 싶어요. 어떻게 보면 샐러리맨이 저와 안 어울릴 수도 있지만 <완전보험주식회사>도 그런 이유로 선택해 본 거고요. 그런 식으로 계속 다른 것들을 해보려고 해요. 아직까지는 부딪치고 욕먹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박민정 – 그런 시기가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외모나 분위기 때문에 항상 밝은 역할을 많이 주셨는데, 이제 30대 중반이 되니까 호흡 자체가 내려가는 게 있더라고요. 옛날에는 발랄한 게 쉬웠다면 지금은 발랄한 연기를 하려면 마음을 먹고 나가야 하는 것들이 생기다 보니까 조금 깊이가 있는 작품도 만나보고 싶다는 바람도 생겨요.

박훈 – 아마 여배우들은 더 힘들 거예요. 얼마 전에 <헤비메탈 걸스>를 봤는데, 아무래도 요즘 작품들이 남자 캐릭터 편향적인 부분이 많아서 여배우들이 정말 살아남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작품과 이렇게 좋은 배우들이 있다는 것은 굉장히 의미가 있다 생각했죠.

9 ★

본인을 포함한 세 경찬과 세 화영의 매력이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박훈 – 먼저 (홍)우진이 형은 예전에 방송된 <반올림> 같이 통통 튀는 하이틴 드라마 같아요. 그리고 (박)해수는 반전드라마 같고요. 해수를 만나기 전에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작품을 먼저 봤는데, 그런 배우를 처음 봤어요. 내 정도 나이에 혼자 토월극장을 에너지로 메울 수 있는 배우가 몇이나 있을까 싶더라고요. 그런 에너지를 가진 친구가 농담처럼 그런 얘기를 해요. 토월극장도 메운 사람인데 아트원 3관은 못 메우고 있다고(웃음). 그 정도로 본인한테도 이 작품이 도전인 것 같아요. 의외로 귀여운 면도 많고 제가 느꼈던 이미지와도 다른 점이 많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여섯시 내 고향> 같은 지극히 향토적인 경찬이에요. 제가 아무리 세련되게 꾸민다한들 시골에서 20년 넘게 살았던 ‘촌놈’의 근성을 숨길 수는 없어요. 제가 표현하는 경찬에는 그 기질이 묻어나올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박민정 – 화영이도 세 명 다 정말 다른 것 같아요. 정연 언니는 에너지가 좋고 웃음 포인트를 잘 살리는 편이라면 (박)보경 언니는 조금 더 따뜻하고 경찬을 감싸주는 모습의 화영을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다른 분들은 어떻게 느끼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어떤 고민이나 걱정도 없이 즐겁게 운동하는 발랄하고 밝은 화영을 표현하고 있어요.

박훈 – 덧붙이자면, 민정이가 표현하는 화영은 여성적 색깔이 강한 밝은 화영이에요. 정연이는 <트라이앵글> 때 같이 하기도 했었는데, 의외로 어떤 면에서는 보이쉬한 소년 같은 느낌도 있더라고요. 그리고 보경이는 말 그대로 유연한 것 같아요. 실제로도 어머니의 피가 흐르다보니 따뜻함과 온화함이 배어나올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극 전체를 봤을 때, 가장 그 나이대의 풋풋함이 느껴지는 부분이 경찬과 화영의 장면 같다. 그 중 가장 힘주고 포인트로 주는 장면은 있는가

박민정 – 사실 저희가 초연 연습할 때, 다들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경찬과 화영이 만나는 신, 민욱과 화영이 만나는 신에서 풋풋함이 잘 안 나왔어요. 그래서 연출님과 함께 다 같이 고민을 했었죠. 화영이가 경찬이와 만나는 신에서 쭈뼛거리는 것 외에도 입으로 ‘풉’ 하고 소리를 내는 것도 연습하는 과정에서 에피소드를 조금이라도 만들어 보려고 여러 가지를 해보다가 나온 거예요. 그런 행동이나 액션들을 만들고 그게 합이 잘 맞았을 때, 두 사람의 풋풋한 느낌이 잘 사는 것 같아요.

박훈 – 민정이가 말한 것처럼 연습할 때 굉장히 어려웠어요. 1차원적으로 ‘난 너만 보면 웃음이 나’ 이런 식으로 접근하기엔 저는 그런 적이 없었거든요. 제 경우에는 오히려 더 아닌척하고 피했던 것 같아요. 저는 두 사람의 첫 만남이 경찬 입장에서는 좋으면서도 무섭다고 생각을 했어요. 가령 반지를 준비해서 프러포즈를 하거나, 이성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잖아요. 그때는 내가 이성적이거나 상식적이지 않았으니까, 상식적이지 않은 것들이 나오면 분명히 그때의 감성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연기를 했던 것 같아요.

초반 경찬은 민욱과 달리 적극적으로 화영에게 대시를 하고 고백도 한다. 그리고 거절을 당하게 되는데, 마치 경기에서 경찬이 기권해오던 것처럼 포기도 빠르다. 정말 경찬의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없었을까

박훈 – 그건 마치 제가 느끼는 어떤 일부의 감정 같은 건데, 시골 사람들이 서울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경찬의 입장에서는 서울 사람인 화영에 대한 동경도 있었을 거예요. 나와는 너무 다른 사람이고 내가 감히 도전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것들이 보이면 어느 순간 툭 내려놓을 수 있는 것 같아요. 말 그대로 첫눈에 반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그 상황도 빨리 정리될 수 있는 거죠. 하지만 기억에는 강하게 남겠죠.

박민정 – 실제로 박경찬 작가님도 정말 그러셨대요. 짧게 한 경험인데도 지금까지 기억에 크게 남아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유도소년] 박훈(경찬 역), 박민정 (화영 역)

지난 시즌 관객들과 함께 한 이벤트에서 화영에게 바치는 자작곡이 인상적이었다

박훈 – 사실 ‘노래방데이’를 한다고 해서 7분 만에 만든 곡이에요. 저는 극단 ‘간다’에 처음 와봤는데 양경원, 박정민, 조현식 배우가 음악을 준비하고 춤을 추면서 너무 열심히 준비하더라고요. 관객과의 이벤트에서 이렇게 공연보다 더 열심히 준비하는 사람들을 처음 봤어요. 이러다가 나만 매장 당하겠다 싶어서 급히 자작곡을 쓰기 시작했죠. 코드 네 개 가지고 쭉 써서 불렀는데 드라마를 아는 관객 분들은 굉장히 좋아하시더라고요. 음도 멜로디도 모르는 노래지만 공감대가 있는 사람들 사이에는 특별한 노래가 되기도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이 공연을 같이 본 사람들이 공유하면 굉장히 재밌는 노래가 되는 것 같아요. 

화영이라는 캐릭터가 텍스트 적인 부분만 보면 속칭 ‘어장관리녀’의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극을 보다 보면 화영이 사랑스럽다는 느낌이 더 든다. 자신이 그리는 화영은 어떤 인물인가

박민정 – 화영이란 인물 자체가 단순해요. 대본에 잠깐 나오지만 집에 어려운 일이 있었는데도 굉장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요. 실제로 저도 크게 고민을 하지 않는 성격이에요. 그래서 경찬이를 만나든 민욱이를 만나든 간에 어떤 계산도 없이 순수하게 그 순간의 모습만 보는 거죠. 깊이 생각하지 않고.

“걔 그런 애 아니에요.” 라는 대사가 그 부분을 잘 표현해주는 것 같다

박민정 – 그렇죠. 실제로 저도 그런 적이 있었거든요. 어렸을 때, 엄마들 눈에 질 안 좋은 친구들 만나면 “쟤 만나지마”, “쟤 사귀지마” 그러잖아요. 전 그게 너무 싫었어요. 왜 알고 보면 나쁜 애가 아닌데, 엄마는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말을 하냐고 울었던 적도 있어요. 화영과 비슷한 면이 있었죠.

화영이 경찬에게 ‘감정의 색깔’이 다르다는 표현을 하고, 그것은 극이 끝날 때까지 정의되지 않는다. 두 배우가 생각하는 ‘감정의 색깔’의 정의는 무엇인가

박훈 – 어떤 표현 방식의 하나였겠지만 ‘다르다’였다는 것 같아요. 지금 너와 내가 다르듯이 감정이 다르다. 화영의 입장에서 예쁘게 거절하는 방법을 굳이 색깔로 표현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너랑 나랑은 근본이 다른 것 같아 이러면 상처를 받잖아요(웃음). 표현이 모호한 것 같지만 경찬의 입장을 생각하는 거죠.

박민정 – 경찬이가 상처받지 않게 하려는 순간적인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물론 남자들 입장에서는 화영이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어요.

박훈 – 아니에요. 남자들 입장에서 보면 무조건 화영이를 좋아해요. 남자 관객들은 화영이를 보더라고요. 그리고 남자 관객들은 경찬이 편이에요.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남자들은 저 같은 사람을 보면서 ‘분명 나한테도 기회가 있을 것이다’는 동질감을 느끼면서 보기 때문에 무조건 제 편을 들어요.

박민정 – 지인 중에 한 남자 분이, 이 극을 해피엔딩이 아니라 새드엔딩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왜 민욱이는 다 가져가고 경찬이가 저렇게 화영이와도 잘 안되고 경기도 지냐고 이건 너무 슬픈 극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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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화영도 다치고 경찬도 메달을 따지 못하는 ‘실패의 정서’가 이 극에 녹아있다. 이후에는 어떻게 됐을까를 상상해본다면

박민정 – 화영이는 운동을 열심히 해서 대학을 갔을 것 같아요. 어쩌면 민욱은 조금 더 특별한 삶을 살게 됐을지도 모르겠지만, 경찬과 화영은 평범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박훈 – 경찬이는 그 이후에도 크게 메달을 잘 따거나 그러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사실 신체적 능력은 정해져있어요. 타고난 체격이나 체력을 이길 수는 없거든요. 이미 더 발달한 선수들이 있기 때문에 그 당시에 경찬과의 격차도 벌어진 것이고, 노력한다고 해서 기적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설사 그게 운동이 아니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용기를 얻었을 거예요.      

작품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초심’에 비추어봤을 때, 현재를 평가한다면 어떤 것 같은가

박훈 – 저는 배우가 되겠다고 생각한 처음 마음에 비하면 가끔 제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질 때도 있고 잘 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고 여러 가지 여건이 뒷받침되지 못했기 때문에 쉽지 않은 과정을 겪어왔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것들을 보상 받을 만큼 충분히 잘 해내고 있는 것 같아요. 굉장히 좋은 일을 선택했고 잘해오고 있고, 앞으로도 잘해 나가면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의 것들을 이룰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박민정 – 저는 오빠와는 반대로, 연기를 너무 어릴 때 시작하다보니 인생 최고의 슬럼프를 너무 일찍 겪었어요. 사실 고등학교 때가 제일 열심히 살았던 것 같아요. 대본을 머리맡에 두고 잘 정도로 항상 대본을 끼고 살면서, 새벽에 집에서 나가서 낮에는 학교 극장에서 연습하고 밤에는 운동장에서 연습하면서 연기밖에 모르고 살았거든요. 그 열정이 한번 꺾이니까 돌아오기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10년 넘게 연기를 해왔지만 새로운 작품, 새로운 배우들을 만날 때마다 항상 마음을 다잡고 즐겁고 재미있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글. 이하나 (bliss@stagekey.co.kr)
사진. 양하경 (photong@stagekey.co.kr)
사진제공. Story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