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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규 배우 [레미제라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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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의 박형규

앙졸라의 빨간 조끼처럼 붉게 타오르는 열정

 

 


대형중형 작품의 전체적인 배경을 만들어내는 뮤지컬의 꽃 앙상블.

 

<그리스앙상블로 데뷔한 <히스토리보이즈포스너, <쓰릴미리차드의 이재균 배우, <번지 점프를 하다>에서 선생님역과 앙상블을 맡았던 <히스토리보이즈스크립스, <여신님이 보고계서석구의 안재영 배우 등 요즘 앙상블 배우들의 행보가 두각을 보이고 있다.

 

한 사람한 사람이 모여 퍼즐을 맞추듯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 내기 위해 주연 배우들보다 더 많은 연습을 한다는 그들어쩌면 주조연으로 발탁 되고 있는 그들의 두각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기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 되는 배우 한 명이 있다.

 

장발장코제트마리우스보다 자베르앙졸라가 더 매력적이게 느껴지는앙상블이 빛나는 작품 <레미제라블>에서 얼마 전까지 남자 앙상블을 하다가 커버로 앙졸라을 한 박형규 배우.

 

블루스쿼에 극장에서 앙졸라의 빨간 조끼만큼 붉게 타오르는 열정을 가진 그를 만났다.

 


 

 

열정과 냉정 사이

 

2007년 뮤지컬 명성황후로 데뷔한 박형규 배우의 프로필에는 다른 배우들과는 다른 조금 특이한 이력이 있다바로 경제학과 학사라는 학력. <레미제라블>에서 보여줬던 뜨거운 에너지에서 쉽게 연상할 수 없는 차분한 어감 때문에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올렸다무대 위에서 그가 입은 빨간 조끼만큼이나 뜨거운 에너지를 발산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다소 딱딱한 느낌이 드는 경제학 사이에서 그는 어떻게 감수성이 풍부한 배우가 됐을까?

 

전공을 살려 모 라면 회사 마케팅 분야에 취직 했지만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행복해지지 않았죠.”

 

어렸을 때부터 그는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중 3때부터 기타를 쳤고고등학교 때는 합창단 단장을 했다계속해서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쳐 경제학과에 들어갔다서강대에 입학하며 부산을 떠나게 된 그는 ROTC와 통기타 동아리 활동을 하며 좀 더 자유롭게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각 대학교에서 하는 가요제에서 자작곡으로 대상을 받은 적도 있고유재하 가요제란 곳에서 작곡작사연주편곡을 혼자 다해서 15만 대 1의 경쟁을 뚫고 본선에 나가 장려상을 받았던 적도 있어요.”

 

자기 자랑을 하는 것이 쑥스러운지 ‘15만 대 1의 경쟁이란 부분에서 푸흐흐하고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대학생활에 대한 추억들을 풀어 놓았다대학시절의 그는 성실한 학생인 동시에 재밌게 놀 줄도 아는 학생이었다학업에 열중하며 취미로 음악을 즐기는 낭만적인 캠퍼스 라이프음악을 마음껏 즐길 시간이 있었기 때문인지 대학시절까지는 자신의 전공에 대한 불만이 없었다그러나 군대 제대를 하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사회인이 되자 상황은 달라졌다.

 

정말 힘든 시기였어요아무리 일해도 행복하단 생각은 들지 않고성취감도 느껴지지 않고저희 부서 부장님이 음악을 하다가 취직을 하신 분이었는데회사에서도 계속 곡을 쓰셨어요그 모습을 보니 부장님처럼 음악의 길이 내 삶에서 잊히지 않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직장생활에 좀처럼 적응 할 수 없었던 그는 자신처럼 음악을 하다 취직을 한 부장님을 보며 음악에 대한 미련을 쉽사리 버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장님처럼 평생을 미련을 가진 채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한 번 아버지에게 자신의 뜻을 밝혔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완강했다. 

 

죽지 말아……살아야 돼…….”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며 주인공을 향해 그가 외친 말이다영화를 보는 내내 평평 울며 모니터 속의 주인공과 대화를 하던 그는 돌연 사표를 내고 두 달간 인도 여행을 떠났다아버지에게 맞아 죽을 각오를 한 결심이었다.

 

아버지께서 물었죠.”

그렇게 하고 싶으니?’

하고 싶습니다.’

그럼 2년간 시간을 줄 테니 내가 만족 할 수 있는 결과를 가져와라.’

 

불같이 화를 내실 줄 알았던 아버지는 화를 안으로 삭이는 듯 삼 일간 침묵 했다그리고 조용히 자신을 불러 건넨 기회의 말에 그는 다시 수험생이 된 기분으로 음악공부에 매진했다.

 

“2년이란 시간을 고수험생처럼 지냈던 것 같아요영어 단어를 외우듯이 기타치고드럼패드 치고피아노 치고……정말 정신이 없었죠.”

 

대학로의 한 재즈 아카데미를 다니며 음악공부를 하던 그는 우연히 뮤지컬이란 장르를 알게 되었고여러 차례의 오디션을 보며 자금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그가 회상하는 2년의 시간은 치열했지만그만큼 행복했다끈질긴 사투 끝에 이겨낸 기회였기 때문이다현실의 냉정에서 벗어나 꿈의 열정 속으로 들어간 그의 삶은 다시 대학교 시절처럼 윤택하게 빛나고 있다.

 

 

 

비전공의 핸디캡은 열정과 노력으로

 

예술 전공자가 일반 회사에 입사 원서를 내면 왜 이곳에 왔나?’라는 물음을 받는 것처럼 그에게도 비전공자라는 딱지가 붙어 다녔다뮤지컬을 쉽게 본다고 생각하거나취미처럼 생각하는 안일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라는 오해를 받기 일쑤였다.모든 것을 다 버리고 왔기에 전공자 못지않은 치열한 마음이었지만그들의 눈에는 뜨내기처럼 보였을 것이다.

 

비전공자라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혼자라는 거죠오디션 갈 때마다 혼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 같은 느낌정말 외로웠어요다들 서로 아는 체도 하고 긴장도 별로 안하는 것 같은데전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고 혼자다 보니 더욱 더 긴장이 됐죠혼자 벽보고 목 풀다가 큰 소리 내면 안 될 것 같아서 소심해 지고(웃음).”

 

예술은 삶 속에 녹아 있다전공을 나와도 다시 현장에서 재교육을 받아야 하니 이쪽 세계와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 좋다.’ 연출가극작가 인터뷰에서 진로에 관련 된 질문이 나올 때마다 나오는 답변이다업계의 사람들은 다양한 경험을 중시하며 다른 학과를 가는 것이 오히려 유리할 수 있다는 말을 늘 하지만현실의 지망생들은 업계와 관련된 학과를 지망한다그 학과를 다니는 동안 쌓이게 될 전문적인 지식과 인맥 때문이다.

 

“<명성황후>에 붙은 건 정말 운이었어요제 스스로가 생각해도 그땐 별로 실력이 좋지 않았거든요(웃음). 오디션 장소가 서강대 메리홀이었는데모교 다 보니 다른 오디션에 비해 심적으로 마음이 편했죠동아리방에 들려서 목도 풀고충분한 준비 시간을 가질 수 있었어요오디션 장소가 서강대가 아니었다면 떨어졌을지도 몰라요.”

 

어떤 직업이든 비전공자가 전공자와 경쟁하는 일에는 여러 가지 핸디캡이 생긴다뮤지컬 배우가 되기 위해 필요한 소양연기와 노래춤 중에서 그를 가장 얘 먹였던 것은 의외로 춤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좋아해서 리듬감이 있는 편이었어요당시 유행하는 가수들의 춤을 학교 축제나 학예회에서 출 정도로 춤에는 나름 자신이 있었는데막상 오디션에 붙고 연습에 들어가니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는 거예요발레 동작을 할 때 ‘1번으로 서라는 식으로 번호를 붙인 전문용어로 말하는데 그런 수업을 들어 본 적이 없어서 혼자 ‘1번이 뭐지?’하고 두리번거리며 눈치껏 배웠던 기억이 나요발을 포인하라고 하는데 포인이 뭐지?’하고 어리둥절해 하고그런 에피소드들이 참 많아요.”

 

춤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없었던 탓인지 여러 가지 무용 동작이 많은 뮤지컬 안무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음악으로 다져온 리듬감을 자부 했건만뻣뻣한 목각 인형이 된 것처럼 내 몸이 생각처럼 움직여지지 않는 느낌이었다고 그는 회상한다인지도가 좋은 뮤지컬 배우들 중에 춤을 잘 추지 못하는 배우들도 은근히 많지만그는 군무의 비중이 높은 앙상블이었기에 춤으로 인한 고난이 누구보다도 컸다.

 

춤 때문에 <명성황후>를 처음 했을 때 무과 시험’ 부분에서 잘린 적이 있어요제가 빠지면서 다른 분이 투입되셨는데 원래 그 장면을 맡지 않으셨던 분이라 굉장히 죄송했어요그 이후로 춤 때문에 오디션에서 여러 번 고배를 마셨어요함께 <명성황후>를 했던 배우들과 상담을 했었는데자신이 아는 선생님을 소개해 줄 테니 춤을 배우라고 하더라구요그 당시 제 생활비가 20만원이라 춤 레슨을 생각도 할 수 없었는데최세한 선생님 덕분에 학원 홍보 전단지 붙이기현수막 달기청소하기 등의 일을 하는 조건으로 춤을 공짜로 배울 수 있었어요.”

 

그렇게 그는 학원에서 살다시피 하며 춤에 매진한 결과 두 번째로 하게 된 <명성황후>에서 당당히 무과 시험 장면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얼굴로 무대에 서는 환희의 감각

 

꽤 큰 규모의 회사 사원으로 일하던 그가 안정적이던 자신의 세계를 버리고 월 생활비 20만원의 궁핍한 세계 속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행복때문이었다아무리 열심히 일을 하고 월급을 받아도 아무런 성취욕도 느낄 수 없던 정지 된 세계 속에서 나와 몸은 힘들지만 비로소 자신의 시간이 움직이는 것 같은 생동감 넘치는 세계 속으로 편입 된 그의 심장은 지금 행복감으로 팔딱거린다퇴직이후 그가 맞본 최초의 행복은 앙상블로 데뷔한지 3년 만에 이름이 있는 배역을 하게 된 2010년 <미스사이공>에서였다.

<미스사이공>에서 투이역을 맡으며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과 얼굴로 무대에 서는 환희를 겪는다하나의 덩어리를 만들어내는 조각들 중 한명으로 무대 위에 오르던 그가 박형규라는 개인의 모습으로 무대 위에 선 환희의 순간이었다.

 

지난 3년 동안 오늘을 기다렸어…….”

 

꿈결 같은 표정을 지으며 그가 나직이 속삭였다보물섬을 앞에 두고이제까지의 고된 여정을 떠올리는 소년 짐 호킨스 같은 표정이었다.

 

장군이 된 투이가 킴과 만날 때 나오는 첫 대사이자첫 공연 날 제가 외친 파이팅 구호에요. <명성황후앙상블로 데뷔 후 딱 3년이 되던 날이었거든요. 3년 만에 이름 있는 첫 배역을 따낸 거죠그 날의 벅찬 기분이란……목구멍에서 무언가가 계속끝임 없이 울컥울컥 했는데……어휴말라는 설명이 안돼요(웃음).”

 

목이 메는 목소리로 말끝을 흐리던 그가 휘휘 손을 저으며 너스레를 떨었다붉게 젖어드는 그의 눈시울 너머로 그 날의 가슴 벅찬 환희가 보이는 것 같았다. <미스사이공이후 약간의 공백기를 보내다가 <레미제라블>로 돌아온 그는 다시 앙상블이 되었다오랜 앙상블과 커버 생활이 힘들지 않았냐고 묻자고충 대신 환한 웃음을 지었다.

 

글쎄요나중에 더 큰 배역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은 있지만 앙상블이나 커버를 해서 불행하거나 힘들다고 느낀 적은 없어요지금은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있잖아요그 기쁨이 저를 계속 키워주는 힘인 것 같아요.”

 

모 라면 회사에 다니며 하루에 한 번씩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나?’ 생각하던 방황의 시절에 비하면무엇을 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는 지금의 시간이 훨씬 더 행복하다고 그는 말한다조연에서 다시 앙상블이 된 것이 섭섭할 수도 있지만 <레미제라블>은 앙상블의 힘이 큰 작품이다특별히 불리는 이름도 없지만 앙상블 한 명 한 명에게 캐릭터가 부여 돼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학교에서 수많은 학생들 중 한 명일 뿐이고사회에선 직장인들 중 한 명일뿐이지만집으로 돌아오면 개인의 내가 되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는 기분이다이름 없이 무대에서 시민군을 이루지만그들은 모두 각자의 삶에서 한 명의 아버지어머니아들이다.

 

“<레미제라블>은 참 고마운 작품이에요앙상블 중의 한 일원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서 개인의 연기와 노래그리고 캐릭터의 색깔을 표현할 수 있거든요앙상블 일원 개개인의 개성이 모여서 하나의 전체적인 그림을 조화롭게 만들어 가죠배역의 이름이 없을 뿐이지내 얼굴로 공연을 한다는 느낌이에요앙상블의 가장 힘든 점이 나의 부재거든요내 얼굴이 없는 느낌이랄까앙상블을 하다 보면 가면을 쓰고 공연하는 것 같은 느낌이 종종 들죠.”

 

앙상블이지만 동시에 커버 배역이 세 개나 있는 그는 배역이 있던 <미스사이공>보다 더 긴장중이다언제 어느 역할로 투입 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커버 배역이 세 개나 있다 보니 긴장을 늦출 수 없죠매일 커버 배역의 대사와 가사를 연습해요커버로 공연에 오를 때 다른 배우에게 해가 되면 안 되잖아요특히 관객들이 공연을 보실 때 커버역 때문에 극 전체의 밸런스가 틀어진다고 느끼지 않게끔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박형규가 꿈꾸는 배우 박형규

 

계단을 밟듯한 단계한 단계 성실하고 정식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그아직은 앙상블에 머물러 있지만 그가 가진 배우로써의 마음과 프로의식은 여느 유명 배우들 못지않다나이를 먹을수록 좀 더 유명해지고 싶은 조바심이 나기 마련이지만 그는 내일의 미래가 아닌몇 년 후의 먼 미래를 보는 사람처럼 여유롭게 현재의 시간을 즐긴다자기 자신의 방식으로 깨우치는 것만큼 좋은 성장은 없는 것 같다고 그는 말한다그는 지금 성장을 위해 자신의 껍질을 한 겹한 겹벗어내고 있다.

 

뱀은 계속해서 허물을 벗잖아요저에게도 껍질을 벗는 순간이 수차례 있었어요앞으로도 수차례 겪게 될 거구요허물을 벗을수록 더 커지고 아름다워지는 뱀처럼 저도 계속해서 껍데기를 벗고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자신의 성장을 확인하고성장할 계기를 만들기 위해 그는 계속해서 연기 레슨을 받고 있다연기 레슨을 받기 시작한지 어느덧5년이 다 되어간다는 그의 말을 들으니얼마 전 방영한 토크 프로 <힐링 캠프>에서 이정재 배우가 정기 검진을 받는 개념으로 연기 레슨을 계속해서 받고 있고 있다는 말이 생각났다.

 

연기 레슨은 저에게 정기적으로 받는 건강 검진과 같아요레슨을 받으며 자신을 되돌아보고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저를 시험하는 거죠.”

 

<레미제라블대구 공연에서 앙졸라를 맡은 이후 서울 공연에서도 몇 차례 앙졸라를 한 그의 연기에 대해 관객들은 절반의 비율로 호불호를 나타내고 있다시민군을 이끄는 빨간 조끼가 매력적이었다는 평이 있는가 하면노래가 아쉬웠다는 평도 있었다좋다는 건지나쁘다는 건지쉽게 가늠 할 수 없는 절반의 비율처럼그는 아직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은 가능성의 세계에 서 있다그의 추가 어느 쪽으로 기울지 알 수 없지만단 하나 확실한 것은 그가 성장의 방향성을 정확히 알고 있는 배우라는 것이다.

 

미국 싱어송라이터인 루더 밴드로스가 Dance with my father 라는 곡으로 그래미상을 수상 할 때그가 말한 수상 소감 방식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내 꿈은루루루루루루~’하면서 말을 하는 중간중간 노래를 불렀는데 그 사람과 그 상황 자체가 노래인 것 같았어요그 사람의 모든 것이 노래가 되는 것처럼저도 공연에 녹아들고 싶어요.”

자신의 삶 자체가 노래고연기며공연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

그가 과연 어떤 배우의 길을 걷게 될지앞으로의 모습이 기대되고 궁금해지는 답변이었다.

 

아버지이제는 친구 분들이 아들이 무엇을 하고 있느냐라고 물어보면 우리 아들 뮤지컬 배우를 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대답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수상 소감으로 말해보고 싶었던 그의 꿈은 이제사람들이 아버지 뭐하시노?”라고 물었을 때 어른이 된 아들이 스스럼없이 당당하게 제 아버지는 박형규 배우세요”라고 말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아직은 박형규라는 이름 석 자를 모르는 사람이 더 많지만언젠가 사람들이 박형규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 그 배우!’하고 반가운 표정을 지을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다리며앞으로 계속 될 그의 성장을 기대해 본다.

  • 물시

    앙상블 배우님도 인터뷰가 올라오다니, ( ^ ^)
    역시 뮤지컬 퍼블릭!!!

  • 허우적

    레미제라블 공식영상 “do you heat the people sing” 에서 침튀기며 노래하시는 것이 정말 열정적으로 보였습니다. 목소리도 정말 좋으시구요. 인터뷰보니 열심히 노력하시는 배우시네요. 응원하겠습니다.

  • 이영주

    형규야 반갑다
    멋지네. 화이팅하자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