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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살리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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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시녀

◈ 날짜: 8월 2일
◈ 날씨: 맑았다가 갑자기 비 옴
◈ 오늘 한 일: 나 빼고 휴가 간 가족에게 울분에 찬 문자 보내기
◈ 내일 할 일: 나 빼고 휴가 간 가족 저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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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살리에르>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 푸념할 것이 몇 가지 있다. 재조명이란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일까? 또한 재조명의 경계는 어디까지 일까? 재조명이란 어떠한 사람이나 사건이 갖는 가치가 폄훼되었을 때, 그것의 가치를 다시 들추어보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었나? 내가 알고 있는 이 정의가 재조명이라는 단어에 해당되는 것이 맞다면, <살리에르>는 재조명이라는 단어를 어떤 의미로 쓴 걸까? 뮤지컬 <살리에르>에 나오는 주인공 안토니오 살리에리는 내가 고등학교 때 처음 알고, 그 후로 쭉 좋아했던 그 사람과는 조금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다. 아니, 어쩌면 이 공연의 작가는 ‘모차르트 오페라 락’을 살리에리의 시점에서 길게 풀어놓은 걸지도 모르겠다. 하다못해 네이버 백과사전과 위키에도 나오는 살리에리와 모차르트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만 훑어보았어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역사왜곡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뮤지컬 <균>을 관람하고 일기를 쓰며 창작극의 문제에 대해 잠깐 생각을 했었다. 어떤 이유로 관객들은 창작극에 대해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일까? 그리고 <살리에르>를 관람하며 그 해답을 찾은 기분이었다. <살리에르>는 창작극 초연에 대한 나의 평가를 절하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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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공연의 프리뷰라는 기간을 알 것이다. 완성된 공연을 개막 후 3일에서 일주일 정도 원가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관객에게 선보이며, 그 사이에 실제 공연 중 일어나는 실수를 수정하는 기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프리뷰를 관람하는 관객은 공연에서 일어나는 약간의 실수를 경험할 수도 있고, 기획팀은 그 실수를 사과하는 의미로 가격을 저렴하게 내놓는 것이다. 그리고 <살리에르>는 프리뷰의 혁명이었다.

광화문연가라는 뮤지컬이 있다. 극이 미완성인 상태로 무대에 올라 관객에게 선보여지고, 프리뷰 기간이 지난 후에도 계속해서 대본과 무대가 수정되는 아주 혁명적인 뮤지컬이었다. 나는 중극장용 광화문 연가를 보는 것 같은 기묘한 기분으로 <살리에르>를 관람했다.

무대의 백 스테이지에는 무대감독이라는 직책을 가진 스텝이 존재한다. 무대감독은 타이밍에 맞춰 모든 스텝들에게 큐(cue)싸인을 내리고, 백 스테이지의 모든 것을 관리하는 직책을 가졌다. 그런 만큼 일반 관객들은 백 스테이지 아주 깊숙이 존재하는 무대감독을 마주할 기회가 적다. 하지만 <살리에르> 팀의 무대감독은 그러한 처우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는지 공연 중 큐사인을 지시하는 자신의 목소리를 객석에도 들릴 만큼 아주 우렁차게 내뱉었다. 내가 처음으로 <살리에르>를 관람했던 프리뷰 기간에는 내 뒤쪽에 연출이 앉아있었다. 연출의 귀가 정상적이라면 나도 듣고 친구도 들은 그 큐사인을 들었을 텐데, 두 번째 관람 날(심지어 프리뷰 기간을 지났었다!)에는 기존의 큐사인 소리가 분열이라도 했는지 늘어났다. 네 번의 큐사인 소리. 그 무한한 존재감에 감탄을. 싸인 좀 해주시죠?

프리뷰 때 고쳐졌어야 했던 조명은 공연 오픈 후 9일이 지난 지금(다시 말하지만 프리뷰 기간은 일주일 전에 끝났다)까지도 불안정하다. 팔로우 스팟이 바들바들 떨리는 것을 보며 나도 공포심에 바들바들 떨었다. 하필 그 날 좌석이 팔로우 스팟 아래였을 건 또 뭐람. 이러다 다치면 아빠한테 거짓말하고 공연 관람한 게 들통 나겠지, 이렇게 다치면 내 상처는 누가 보상해주는가? 한창 집중해야 할 클라이막스에서 나는 조명에 대한 불안감과 분노로 인해 배우가 뭐라고 했는지 듣지 못했다. 조명감독은 내 심장을 위해서라도 팔로우를 재정비해줬으면 좋겠다. 이렇게 <살리에르>를 보다가 죽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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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에르>의 첫 시작은 넘버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를 솔로로 부르며 시작된다. 처음에는 살리에리의 솔로곡으로 불리다가 젤라스가 등장하면서 극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듀엣곡이 되는 수미상관적 구성이 인상적이었다. 살리에리에게 모차르트의 살인죄를 뒤집어씌우고 살리에리까지 죽이려고 하는 ‘그(젤라스)’에게 쫓기던 살리에리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확실한 결말을 보여줬더라면 더 좋은 극이 됐을 것이다.

첫 장면이 마지막 장면으로 끝나는 수미상관법은 관객들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관심을 이끌어낸다는 장점이 있는 매력적인 연출이다. 하지만 <살리에르>의 작가는 이런 매력적 연출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 같은 기법을 사용하며 호평을 받았던 뮤지컬 <글루미데이>와 너무나도 다른 결과였다.

<살리에르>와 <글루미데이>는 같은 형식의 연출을 사용했지만 그 결과가 상당히 다르다. <글루미데이>는 결말에 해당하는 첫 장면에 오기까지 벌어지는 우진과 심덕, 사내의 관계를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보여주며 사내에게 쫓기던 우진과 심덕이 어떻게 되었는지 완벽한 결말을 보여준다. 하지만 <살리에르>는 모차르트를 죽였다는 누명을 쓴 살리에리가 자신의 아내에게 모차르트를 죽인 것은 자신이 아닌 ‘그’라며 공포에 떨고, ‘그’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며 회상에 들어가기 시작하는 첫 장면의 말과는 달리 모차르트를 죽인 것은 살리에리였다는 충격적 반전을 보여주면서 결국 ‘그’와 어떻게 되었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그’가 자신을 죽일 거라며 정신병원에서 공포에 떨던 살리에리는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 보여주지 않으며 1막 첫 장면과 똑같은 장면을 2막 마지막장면에 보여주며 끝이 난다. 아, 난 이제까지 2시간 동안 이미 결말이 스포일러 된 작품을 보고 있었다. 어디선가 앨빈이 ‘이게 다야~, 이게 전부야~’하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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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만 봐서는 그 후 이야기가 존재할 것 같았지만, 역시 사람은 믿을 게 되지 못한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영화들이 시즌이 있는 영화들인데, 그런 스타일이 뮤지컬까지 오게 될 줄은 몰랐다. 심지어 시즌2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제일 당황스러웠다. <살리에르>는 여러 모로 나를 당황시키는 혁명적 작품이었다. 이런 혁명적인 작품을 보고 경악하고 화가 난 나는 보수적인 사람인 것일까?

<살리에르>의 대본을 보다보면 많은 작품이 떠오른다. 뮤지컬 <엘리자벳>, 뮤지컬 <글루미데이>, 뮤지컬 <아가사>.

<엘리자벳>에서 가장 매력적 캐릭터로도 꼽을 수 있는 ‘죽음’과 젤라스는 그 존재 자체가 닮아 있다. <엘리자벳>에서 ‘죽음’이란 추상적 존재가 의인화 된 것처럼, <살리에르>의 젤라스 또한 질투라는 감정이 의인화 된 캐릭터다. 죽음이 엘리자벳의 곁을 떠돌며 그녀를 죽음의 세계로 끌어들이려고 하듯, 젤라스도 살리에리의 곁을 맴돌며 그가 모차르트를 질투하게 유도하며 자신의 편에 서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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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젤라스와 살리에리의 관계를 보며 나는 <글루미데이>의 사내와 우진이 떠오르기도 했고 아가사의 아가사와 로이가 떠오르기도 했다. 특히 젤라스라는 캐릭터 자체가 살리에리의 또 다른 인격이라는 설정을 보며 <아가사>에 나오는 로이가 많이 생각났다. 아가사를 지키기 위해 누구도 다시 나오지 못하는 라비린토스에서 스스로 빠져나와 그녀만을 위한 기사가 되었던 괴물, 로이라는 캐릭터에게 매력을 느꼈었는데, 젤라스 또한 로이와 비슷한 선상에 있는 존재였다. 감정을 형상화한 캐릭터라는 설정 자체가 굉장히 돋보였는데 안타깝게도 작가에게는 그 매력적 설정을 구체화할 능력이 없는 것 같다.

<아가사>에서 로이가 스스로가 아가사 내면의 살의임을 밝히고 아가사를 지킨 것에 반면 젤라스는 끝까지 살리에리에게 자신의 정체도 밝히지 않고, 종국엔 살리에리를 미친놈으로 만든다. 지금까지 극 중 인물들이 나를 왕따 시킨 적은 있어도, 내가 극 중 인물을 왕따 시킨 경험은 없었는데, 이번에 생겼다. 살리에리는 끝까지 젤라스의 정체를 몰랐다.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의 넘버 명은 바뀌어야 한다. 너만 몰랐어, 살리에리. 난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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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라스는 <글루미데이>에 나오는 사내와도 비슷한 존재이다. 사내는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인지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인물로 광기에 사로잡힌 사상가이면서 동시에 그 시대의 암울함 혹은 우진과 심덕을 가로막고 있는 현실의 벽을 상징한다. <글루미데이>에서 우진이 사내를 두려워하며 계속해서 도망가려는 것과 같이 <살리에르>에서도 살리에리가 젤라스의 존재에 공포를 느끼며 도망가려고 한다. 심지어 대사도 비슷하고 노래도 비슷하다. 같은 작가의 대본인 줄 알고 인터미션 시간 때 <글루미데이>의 작가를 찾아봤다.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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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미워하는 캐릭터의 말로를 본 적이 있는가? 보지 않았다면 뮤지컬 <살리에르>의 관람을 추천한다. 작가는 모차르트를 미워하는 모양인지 모차르트를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나락에 빠뜨렸다. 1막에서 화려하게 등장하는 소년 모차르트는 사실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 카트리나와의 만남도 그 또래 소년소녀의 달콤한 사랑이었을 뿐, 살리에리를 견제하거나 그를 절망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카트리나를 이용하거나 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본 캐스팅의 배우가 그런 해석을 한 것인지, 대본상의 모차르트가 그렇게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살리에르> 속 모차르트는 살리에리의 열렬한 팬이었고, 누구보다도 그를 동경하는 어린 소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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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아직 세상물정도 몰랐고, 자신의 천재성이 누군가의 질투를 불러일으킬 것이란 생각도 하지 않았다. 실제 극 중 젤라스의 등장이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을 때인 것으로 보아, 살리에리는 어린 소년이 자신에게 품는 동경을 알지 못했던 모양이다.

위에서 재조명이라는 단어에 대한 푸념을 한 것이 기억날지 모르겠다. 작가가 어떤 식의 재조명을 바란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볼 때 <살리에르>에 나온 살리에리는 열등감과 우울증에 사로잡힌 부정형 ADHD환자였고 모차르트는 생각이 짧은 조증 ADHD의 환자였다. 모든 캐릭터를 정신병자를 만들다니. 여러모로 혁명적인 뮤지컬이다.

또한 황제를 대하는 살리에리나 다른 사람들의 태도도 굉장히 놀라웠다. 아무리 어리고 살짝 모자란 황제라도 황제는 황제이건만 그런 가벼운 태도라니. 평민이 귀족의 발을 밟았다고 사형당하는 그 시대에서 <살리에르>의 황제 요제프는 굉장히 혁신적이고 개방적인 황제였다. 작가가 어떠한 성격의 인물로 황제 요제프를 설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살리에르> 속 황제가 성격 밝고 모자란 황제인 것뿐이지, 실제로 요제프는 굉장히 냉정한 황제였다.

뮤지컬 <살리에르>는 음식연구가의 음식 같았다. 좋은 재료+좋은 재료라고 해서 신선한 딸기+신선한 해물이 맛있는 음식이 되지는 않지만 연구가이기 때문에 연구해보고, 겉보기에는 군침 돌지만 한 입 먹은 순간 분노의 포효가 나오는 맛이 나오는 음식이 탄생하게 되는 것처럼 <살리에르> 또한 좋은 설정+좋은 설정을 너무 과다하게 집어넣었다.

<엘리자벳>의 죽음을 보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아무리 매력적인 설정의 캐릭터를 창조해내도 뮤지컬에서 그 캐릭터의 매력을 가장 효과적으로 발산하는 방법은 대사와 넘버를 통해서다. 아무리 매력적인 대사를 가져도, 아무리 중독성 있는 넘버를 가져도, 그 캐릭터의 등장이 적다면 캐릭터가 가진 매력적 설정은 관객들에게 어필될 수 없다.

젤라스는 정말 매력적인 설정을 가진 캐릭터였지만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기회가 너무 적었고, 그가 등장하는 이유 또한 제대로 설명되지 않았다.

살리에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살리에리는 가장 많은 시간을 무대 위에서 관객에게 어필하지만 그에게는 매력적인 대사도, 분위기도 없었다. 만약 살리에리나 젤라스 중 하나가 이성인 여자였다면 하나씩 모자란 것들을 서로 채워주는 완벽한 커플일 수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살리에리와 젤라스는 남자들이었고, 이건 <풍월주>가 아니었다.

<풍월주> 때도 느꼈던 거지만 정민아라는 작가는 재조명이라는 단어를 자신의 입맛에 맞는 뜻으로 풀어내곤 한다. <풍월주> 때에는 가상인물이었어도 상관없었을 여왕의 존재에 굳이 진성이라는 이름을 붙여 의도치 않게 역사를 왜곡시켰는데, <살리에르>에서도 살리에리와 모차르트 그 둘 모두에게 해로운 대본을 완성시켰다.

작가가 어떠한 이유로 이 둘의 관계를 이렇게 비틀어놓았는지는 관객들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 관객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관람한 공연에서 표현된 그 둘의 관계가 기묘하게 비틀려 있다는 것이며, 작가는 재조명이라는 이름으로 실제 살리에리와 모차르트를 모욕했다는 것이다.

공연을 보는 내내 <모차르트 오페라 락>의 아류작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검은 색 의상으로 치장한 살리에리나 보라색 의상을 컨셉으로 잡은 모차르트, <모차르트 오페라 락>으로 인해 유명해진 모차르트를 질투하는 살리에리의 관계. 작가가 모티브로 했다는 알렉산드르 프시킨 작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에 나오는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는 이렇게까지 비틀린 관계가 아니었으며, <살리에르>를 관람하면서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때 느꼈던 감동이 깡그리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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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모차르트 오페라 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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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살리에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는 몇 가지의 매력적인 포인트들이 있다. 중독성 강한 앙상블들의 멜로디와 배우들의 열연, 디테일한 무대 소품 등. 그래서 나는 다시 한 번 <살리에르>의 티켓을 예매한다. 대본의 구멍은 회전문을 돌면 채워질 수 있을 거란 자기합리화를 하며…….


글. 김다영 리뷰어(fpdhsid@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