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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호 무대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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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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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파격적인 상상력을 제공하면서도 인간미가 잔잔히 흐르는 무대를 꾸며왔다고 평가받는 무대 디자이너 정승호. 올려지는 무대마다 그만의 색깔이 묻어 있어서 이제는 정승호식 무대를 눈여겨 보고 좋아하는 매니아층도 생겨나고 있다. 그의 색깔은 어디서 나오는지 직접 들어보기 위해 혜화동에 있는 그의 작업실을 찾아갔다.

2007년 <스위니토드>의 모던하고 상징적인 골조 무대에서부터 2010년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의 따뜻하고 추억어린 책방 무대, 그리고 지금 상연 중인 <모차르트!>의 음표가 흐르는 무대까지 정승호 디자이너가 꾸민 무대는 뭔가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그 이야기는 관객들을 추억의 아련한 곳으로 데려다 주고 포근하게 안아주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디자인 중 어두운 면에 대해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해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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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자체가 불쌍하고 연민이 느껴지는 존재잖아요. 사람들의 삶이라는 게 로맨틱 코미디 같은게 아니니까.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나 <번지점프를 하다>가 마냥 기쁘고 예쁘기만 한 이야기가 아니니까 무대도 마냥 그런 식으로 디자인하지 않았어요. 예전에 <마이 스케어리 걸>을 하면서 나는 이런 게 안되는구나 생각했죠. 이야기를 풀 때 그런 것들이 무겁게 표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처럼 풀어지니까 정말 힘들었어요. 내가 좀 이상해서, 예쁘고 즐거운 걸 좋아하는 관객분들을 좀 배려하지 않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베르테르>가 내게 딱 맞는 공연이었던 거죠.(웃음) 이번에 <모차르트!>를 함께 한 아드리안 연출하고도 그런 점에서 잘 통해서 작품이 좀 깊고 어둡게 표현된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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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출가 아드리안 오스몬드

  사실 연출가 아드리안 오스몬드와 그가 작업을 같이 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7년 <스위니 토드>의 그로테스크하고 상징적인 무대에서부터, 2012년 <번지점프를 하다>를 거쳐 이번 <모차르트!>까지 무려 세 작품이나 함께 작업을 해왔다. 한 외국 창작자와 이렇게 계속 호흡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둘의 캐미가 잘 맞는다는 것이 신기했다. 심지어 2014년 <모차르트!>가 아드리안이라는 연출을 만나게 된 것도 정승호 디자이너의 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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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와 <레베카>를 하면서 제작사인 EMK가 나랑 잘 맞는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선 작품을 만들 때 정말 목숨을 걸듯이 열심히 하더라구요. 그리고 창작진을 한번 선택하면 끝까지 믿고 확실하게 지원을 해줘요. 그래서 EMK의 작품과 아드리안이 잘 맞겠구나 싶어서 2012년에 아드리안을 데리고 <모차르트>을 보러가서 김지연 부대표에게 소개했죠. 그게 인연이 돼서 우리 둘 다 이번 공연에 합류할 수 있게 됬어요. 나랑 매우 잘 맞는 친구에요. 나이로 따지면 훨씬 동생인데, 생각하는 걸 보면 형 같기도 하고, 우선 인간 자체가 굉장히 따뜻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 자체가 굉장히 따뜻해요. 그래서 작품을 할 때 보면 그게 그대로 작품에 나타나는 거 같아요. 어떻게 보면 내가 아드리안에게 고마운 점이 더 많죠. 아드리안이 있어서 <스위니 토드>라는 좋은 작품을 같이 할 수 있었고, <번지점프를 하다>하면서 더 가까워졌고, 지금 <모차르트!>를 하면서는 거의 형동생 사이같이 되었어요. 연출가와 디자이너의 관계를 떠나서 좋은 파트너죠.”

정승호 디자이너가 아드리안과만 캐미가 좋은 건 물론 아니다. 조광화, 오경택 연출과도 항상 서로 시너지가 발생하는 관계를 유지해 왔다. 조광화 연출과 함께 한 <됴화만발>, 2013년 <베르테르> 그리고 오경택 연출가 함께 한 2011년 <갈매기>, 2012년 <벚꽃동산>, <14인의 체홉> 등은 작품성으로나 무대미술에 있어서 대중과 평단 모두에게 호평을 받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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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모차르트!>는 세 번째 공연되는 작품으로, 화려한 캐스팅과 실버스타 르베이 등 화려한 원작자로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올해 작품은 예년 작품과 많이 달라졌는데, 특히 무대컨셉이 어떻게 기획되었는지 궁금했다.

“초연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고 아마도 관객들은 새로운 작품을 보는 느낌을 가질거에요. 이번 것은 아날로그하게 어둡게 가는 작품이에요. 사실 미술가나 소설가의 인생을 다룬 작품이라면 그림이나 글처럼 어떤 눈에 보이는 형태가 있잖아요. 하지만 음악가는 악보가 파이널 형태가 아니고 연주되는 소리가 파이널인데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음악을 창작하는 사람의 머릿속은 어떨까? 생각하다 아마도 광기가 있을 거 같고 혼란이 있을 거 같아서 그런 광기와 혼란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시각적으로 그것을 어떻게 할까 하다가 모차르트의 친필 악보를 리서치해서 음표들을 많이 차용했어요. 음표가 모차르트의 음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굉장히 직접적인 표현이어서 너무 쉽고 자칫하면 천박해 질수 있어요. 그래서 그렇게 안할려고, 음표를 굉장히 다르게 써 볼려고 했죠.”

[모차르트!] 여기는 빈 [모차르트!] 나는 나는 음악_임태경, 윤펠릭스 (2)
무대 미술면에서 올해 <모차르트!>는 일단 관객들에게 합격점을 받은 듯하다. 음표들이 무대 위에서 형상하는 이미지들이 매우 예쁘다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이런 완성된 모습의 무대를 보기까지는 수없이 많은 사전 작업들이 있어야 한다.

“대본을 읽고 느끼고 분석하는 작업을 할 때, 리서치도 해요. 시대적 배경은 무엇인지, 장소는 어딘지. 그리고 저 같은 경우는 캐릭터도 연구를 해요. 왜냐면 무대 디자인이라고 해서 공간만 디자인하는 게 아니에요. 공간은 물리적 공간인데, 거기에 사람이 들어가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면 물리적 공간보다 더 중요한 심리적인 공간이 되는 거죠. 예를 들어, 여기가 거실인데 그날 주인공이 하필이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에 거기 앉아있다고 해봐요. 그러면 거실보다 더 중요한건 가장 힘들었던 순간의 인물이죠. 이 장면을 거실을 통해서 더 힘들었던 모습으로 구현해 주려고 하는 게 디자이너인거 같아요. 그래서 공간을 디자인 한다기 보다는 장면을 디자인한다고 표현하고 싶어요. 그렇게 장면이 구체화되면 러프 스캐치를 하고, 3D나 모형을 만들어서 연출가를 만나요. 이때 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얘기를 나누는데, 얼마나 우리가 다른가를 확인하죠.(웃음) 그런데 그게 정상이죠. 같으면 안되요. 그건 끔찍한거죠. 서로 생각이 왜 다른지 얘기를 하다보면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구체화되요. 그거에 맞춰서 디자인이 더 구체화되고 수정되면 그 다음에는 기술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것을 기술감독이 다시 검토를 해줘요. 그게 반영이 돼서 무대 제작소로 가고 나서도 무대가 올라가는 순간까지 계속 디자인대로 되는지 점검하고 또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움직여보면서 문제가 되는 부분들을 다시 수정해요.”

정승호 디자이너의 무대를 보면 무대도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제3의 인물이 되어 연기하는 듯한 느낌을 종종 받는다. 예를 들어, <내 마음의 풍금>은 풋풋한 과거의 감성이 무대를 모두 메우고 있어서 무대만 봐도 그 시절로 돌아간 거 같은 느낌을 갖게 했다. <레베카>는 돌아가면서 전진하는 발코니무대가 덴버스 부인의 광기어린 집착을 더 한층 확대해서 보여주었다. 모두 그의 무대미술에 대한 독특한 접근법에서 나온 효과이다.

“어떤 장면이 갖고 있는 정서가 있는데 그 정서를 어떻게 잘 전달할 것인지가 관건이에요. <베르테르>에서도 주인공이 총을 머리에 가져가면 죽는 것을 암시하고 거기서 끝내도 되는데, 그때 해바라기가 쓰러지면 그게 죽음이라는 걸 더 강조할 수 있죠. 그런 식으로 생각을 떠올리려면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해야 해요. 내가 죽으면 도대체 어떨까?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은 어떤가?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그런 아이디어가 나와요. 나는 평소에 이런 저런 사는 것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서 좀 재미 없는 사람이에요. 책도 보고 자료도 많이 보고, 자연도 가까이 가서 접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죠. 디자인을 위해서 그림을 그려보려고 습작들도 많이 해요. <모차르트!>는 작품이 여러 겹이 있어서 곱씹어 볼게 많은데 자칫 잘못하면 종합선물셋트 같아져요. 이것을 어떻게 진한 국물을 낼 수 있는 한우셋트처럼 만들까 고민하면서 그림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그렸어요. 그랬다가 다 캔슬되고 다시 그렸는데, 옛날 그림이 다시 복원되는 과정을 거쳤죠. 그 과정이 너무 힘들었지만 의미있고 재미도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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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무대가 우리에게 풍부한 이야기를 던지는 것처럼 그가 살아온 시간들도 굴곡이 꽤 많다. 그는 학창시절에 미술을 공부한 적도, 재능을 인정받은 적도 없었다. 연극과 공연에 대한 포부도 대학에서 우연히 공연을 올리면서 갖게 되었다. 이런 인생의 굴곡이 오히려 그의 무대에 반영되어 그렇게 창의적이고 독특한 무대가 탄생되었나 싶었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재능이 없어서 그래요. 연영과 다닐 때 여러 가지 하려던 일이 좌절되서 낙담하고 있던 차에 연극을 워크샵 개념으로 한번 해봤는데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연기수업을 받고 연기자가 되려고 했는데 수줍음이 많다보니 안되더라구요. 저 때문에 영화 스텝들이 고생하는 걸 보고 나 좋다고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고생시키면 되나 싶어서 관두었어요. 대신 막노동을 뛰었는데, 같은 막노동도 무대제작하는 일을 해보라는 권유를 받고 아르바이트로 했죠. 무대제작일은 완전히 연극에서 멀어지는 것도 아니고 막노동은 좀 하니까 잘 맞는거 같았어요. 그래서 그때 무대미술로 내 전망을 정했죠. 저는 재능이 뛰어나거나 빨리 두각을 드러내는 타입은 아니고 그냥 오래 버티는 것을 잘할 뿐이에요. 미술을 처음부터 전공하지 않았으니까 미술쪽에서 접근하지 않고 배우나 연출입장에서 생각하면서 디자인을 하기 때문에 제 무대가 남들과 다르다는 평가를 받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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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현재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도 재직중인데 이런 인생의 여러 굴곡은 학생들을 만나 얘기할 때도 도움이 된다. 그는 작품보다 명예나 출세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라고 학생들에게 말한다.

“연극이란 혼자하는 게 절대로 아니고, 나만 잘났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에요. 좋은 팀웍이 있어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고, 좋은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야 좋은 작품이 나와요. 그래서 요즘은 좋은 사람이 되고 옆에 좋은 사람들과 같이 있으라고 학생들에게 말해요. 욕심 부리지 말고 자신이 가진 것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모여야 진짜 좋은 작품이 나와요. 공부는 평생 하는 거니까 자기가 계속 발전시키면 되는 건데, 좋은 사람이 되는 거만큼은 공부보다 더 중요하죠.”

요즘 대학생, 청년으로 사는 일은 고달프다. 학비마련에 스펙 쌓기에 숨 쉴 틈이 없고 취업의 문도 매우 좁다. 게다가 공연계에서 스텝으로 일하는 것도 여러 열악한 상황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정승호 디자이너는 제자들을 보며 선배 세대로서 자신의 분야를 잘 개척해나가야 한다는 책임감을 더 느낀다. 처음에는 학교에서 수업만 하겠다고 고집하던 것에서 외부 작품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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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미술을 비롯해서 뮤지컬 시장이 잘 크려면 작품이 세계화되야 해요. 창작은 많이 올라가는데, 인구는 정해져있고, 시장이 작기 때문에, 우리나라 안에서만 국한되면 발전이 없어요. 그렇게 보면 지금이 매우 중요한 순간이죠. 시장이 커져서 우리나라 컨텐츠가 세계로 나가면 지금만큼은 안 힘들 거에요. 지금 나의 세대에서 그 일을 해두면 우리 후배, 혹은 제자들이 세계에서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장이 마련될 수 있죠. 우리나라 프로듀서가 제작을 하는데, 그 시스템 안에 외국 프로듀서들이 같이 해서 만들고 그러면 이 작품이 오리지널은 한국에 있지만 상품자체는 수출용이 돼요. 조만간 EMK 엄대표가 그런 식으로 다국적 팀을 구성해서 창작을 할 계획이 있다고 들었어요. 그렇게 세계적인 작품을 하는데 참여하려면 이 분야를 준비하는 청년들은 입시학원에 돈 쓰지 말고, 좋은 작품을 많이 보러 다녀야 해요. 뮤지컬만 보는게 아니라 연극, 발레, 오페라, 무용 등 좋은 공연들을 많이 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제일 중요하죠.”

세계화될 우리의 공연을 생각하면 참 가슴 뛰는 일이지만, 이미 한국 관객들의 눈높이는 세계수준이 아닌가 싶다. 해외여행도 흔해져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앤드에서 공연을 보는 것도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고, 꼭 외국에 나가지 않더라도 공연 장면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는 것도 흔한 현상이다. 열성관객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미리 영상자료로 찾아보고 예습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어 버렸다.

“관객들 입장에서는 미리 본 영상과 한국의 공연을 비교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런 비교를 한다는 것이 창작진에게는 굉장히 어려운 문제에요. 그 쪽에서는 백억의 제작비를 쓴다면 우리는 아무리 큰 셋트를 만들어도 3억, 4억하니까.. 당연히 다른 환경이란 걸 인정하고 봐주시면 좋은데 그렇지 않잖아요. 그 때문에 한국의 아티스트나 제작자들이 자괴감에 빠질 때가 많아요. 그렇게 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에서 ‘너는 그런 걸 못하는 디자이너야’라고 말하면 상처가 되죠.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좋다, 나쁘다라고 평가하기 보다는 다른 거라고 평가를 해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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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뮤지컬이 더 발전하기 위해 제작이나 창작진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관객들도 갖춰야 할 성숙한 자세와 역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도 역시, 관객이 되기 전에 좋은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글. 강지나 기자 (wingles@hanmail.net)
사진. 윤수경 기자 (sky1100@hotmai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