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BEYOND THE STAGE <LG 아트센터> 기획팀장 이현정

<LG 아트센터> 기획팀장 이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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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피나바우쉬의 <카네이션>이 처음 LG 무대에 올라왔을때, 그 아름다움과 파격은 국내팬들을 한순간에 사로 잡았다. LG무대 위에서 이자람의 <억척가>를 보고, 마지막엔 객석을 가렸던 장막이 열리면서 무대에서 객석을 바라보는 색다른 체험도 관객들에겐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매년 파격과 화제를 몰고 온 작품들을 선보인 LG기획공연이 지난 1월 13일 티켓 오픈을 시작했다. 이런 선도적인 작품의 기획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지 자세히 듣기 위해 공연기획팀의 이현정팀장을 만나보았다.

 


 

  “처음 LG에서 올렸던 공연들은 다 국내 최초였다. 뭘 해도 신선하고 파격적인 감동을 선사했지만, 지금은 비슷한 공연들이 다른 곳에서도 많이 올라가기 때문에 더 긴장하고 더 고삐를 바짝 죄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객들의 지평을 좀 더 넓힐 수 있는 공연이 무엇일까 항상 고민하고 연구한다.”

  이현정팀장은 18년간 LG아트센터에서 일해 왔는데, LG아트센터의 기획공연이 한국 공연계에 미친 영향을 생각해보면 세계 유수의 공연들을 한국에 소개한 리더라고 할 수 있다. 피나 바우쉬 부터, 레프 도진과 말리극장,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까지 모두 LG아트센터의 안목과 작품선택에 신뢰를 주기에 충분한 작품들이었다. 더군다나 LG아트센터는 장르간 융합을 선도하는 세계적인 작품을 선보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올해 2014년의 기획에도 그런 흐름에서 눈에 띄는 작품들이 많다.

모든 경계 넘기

  “장르간 융합을 보여주는 작품은 세계적인 추세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소개하게 될 것이고, 이러한 형식적인 시도뿐 아니라 작품의 의미나 내용면에서도 동시대를 살면서 관객들이 함께 고민하고 생각해야 할 문제들을 다룬 작품이 있다면 적극 소개하고 싶다. 2012년에 공연한 DV8 피지컬 씨어터 공연에서는 이슬람 여성의 인권문제를 비롯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는 다양한 사회 문제들과 같은 민감한 이슈를 다뤘는데,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공연을 통해 접함으로써 관객들의 가치관과 시야가 넓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올해 작품 중에서도 그런 시의성을 가진 작품들이 있는데, 먼저 조르디 사발과 에스페리옹 21이 연주하는 <동양과 서양>이 있다. 이슬람과 기독교 문화가 공존하는 스페인 출신 아티스트로서 조르디 사발은 현재의 세계적 갈등과 충돌을 음악으로 풀고 싶어 했다. 이번 공연에서 그는 이 두 문화가 가진 유사한 정서와 이들이 얼마나 조화롭게 화합할 수 있는가를 아름답게 보여줄 것이다. 또한 폴란드 연출가인 얀 클라타의 <어머니와 조국>은 현재 폴란드가 갖고 있는 전후 세대와의 갈등, 개인과 사회와의 갈등과 정체성의 혼란 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이건 비단 폴란드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쟁을 겪은 우리 세대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문제라 생각한다.”

DV8 <Can We Talk About This?>

 조르디 사발

ⓒ LG 아트센터

  사실 예술에 있어서 장르의 구분은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LG아트센터는 전통적인 장르의 경계넘기를 통해 새로운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공연을 선도적으로 소개해왔다. 더 나아가 공간적 형식의 틀을 깨버리는 시도도 꾸준히 해왔다. 이자람의 <억척가>, 서재형 연출의 <더 코러스:오이디푸스>와 러시아 작품 <검은 수사>와 데레보의 <신곡> 등에서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깨는 작업을 했고, 2013년에 두 댄스 씨어터와 공동제작한 <춤, 극장을 펼치다>도 그런 실험의 일환이었다.

  “작년에 했던 <춤, 극장을 펼치다>는 장소특정공연(site-specific performance)이라는 형식으로, 무대 세트를 반입하는 로딩 도크에서부터 배튼이 내려오는 그리드까지 관객들이 이제까지 가보지 못했던 무대 구석 구석을 돌아다니고 따라다니면서 보는 공연이었는데, 해외에서는 이미 많이 공연되는 형식이다. 브로드웨이에서는 <Sleep No More>라는 영국작품이 엄청난 흥행에 성공하며 장기공연 되고 있다. 이런 작품들은 모두 관객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한 공연인데다 연극, 무용, 건축, 기술 등 여러 분야 전문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예술가들에게뿐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라 앞으로도 계속 시도할 계획으로 활발히 논의 중이다. 공간적 제약을 넘어선 공연, 로비나 백스테이지에서 자유롭게 우리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공연들을 더 많이 하고 싶다. 비록 공연장은 하나이지만 이러한 시도들로 공간적 제약을 넘어서고 싶다.”

 

  <춤, 극장을 펼치다>

LG아트센터

 

올해 새롭게 주목 되는 공연

  LG아트센터가 처음 소개했을 때만해도 낯선 이름이었던 아티스트들이나 한 국가의 문화가 그 다음에는 하나의 트렌드처럼 자리 잡는 경우도 많이 있다. 대표적으로 루마니아나 러시아 극단이 그렇다. LG아트센터 무대를 통해 대중적 인지도와 예술적 지평이 넓어진 예술가들도 많다. 이자람의 <억척가>가 전국을 넘어 전 세계를 돌며 공연되고 있는 것은 이제 새로운 소식이 아니다. 2012년에 개봉한 영화 <Pina>의 성공도 LG아트센터가 개관이래 꾸준히 소개하고 있는 피나 바우쉬의 무용극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런 점에서 2014년에 새롭게 소개되는 아트스트의 공연에 눈길이 많이 간다.

  “우선 가장 주목되는 예술가는 도이체스 테아터이다. 150년이 넘은 명망있는 독일 연극단체로 현재는 독일의 현대연극을 가장 잘 공연하는 극단이기 때문에 독일 연극의 현주소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이번에 상연하는 <도둑들>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고뇌를 담은 이야기인데다 작가와 연출가의 호흡이 매우 좋은 작품이라 기대가 된다. 무용 쪽에서 보자면 벵자멩 밀피예로, 나탈리 포트만의 남편이자 영화 <블랙스완>의 안무가로 유명한 사람인데, 올해부터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예술감독으로 임명된, 현재 세계에서 가장 ‘핫’한 안무가이자 연출가이다. 음악 장르에서는 뱅온어캔을 제일 추천하고 싶다. 쉽고 대중적으로 현대음악을 풀고 있는 아티스트로 신선한 메시지를 줄 거라 생각한다.”

도이체스 테아터 <도둑들>

ⓒ LG아트센터

  LG아트센터는 영향력있는 연출가와 공동제작하는 연극도 매년 화제가 되었다. 올해는 현재 가장 왕성하게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김광보 연출과의 공동제작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기존에 공동제작을 해왔던 양정웅, 고선웅, 서재형 연출 등이 한국 연극의 젊은 신진세력의 느낌을 주었다는 점에서 보면 김광보 연출과의 작업이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가장 영향력이 있을 때 가장 좋은 극장을 만난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개인적으로 김광보 연출은 대중성과 예술성을 다 잡는 연출로서 캐릭터 설정이 분명하고 군더더기 없는 연출에 작품의 메시지도 분명하게 전달하는 분이라 생각한다. 소극장 위주로 공연되는 우리나라 연극계 실정상 대극장 무대를 경험한 연출가가 많지 않은데, 김광보 연출은 중·대극장을 두루 경험하셨기 때문에 우리 극장을 맘껏 가지고 놀 수 있는 분이라 생각했다. 보통 국내 작품은 작품의 모든 제작 과정에 우리가 직접 참여해서 이뤄진다. 기획단계부터 배우 및 스텝 섭외, 그리고 연습도 LG아트센터의 리허설룸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계속 함께 협의하면서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직접 참여한다. 이번에 우리 극장에서 올린 작품은 아직 협의 중이다. 몇몇 후보작들을 대상으로 고민하고 있는데 이제까지 창작극을 많이 하셨기 때문에 이번에는 고전을 해보려고 하신다. 김광보 연출은 고전을 한다고 해도 자신의 색깔이 분명하기 때문에 새롭고 재미있는 작품이 나올 거 같다.”

  올해 기획공연의 또 하나의 특이점이 있다면 뮤지컬 <보이첵>을 LG아트센터가 공동 제작한다는 점이다. LG아트센터가 뮤지컬 제작에 참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인데, 그 점이 이 작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뮤지컬 <보이첵>은 윤호진 연출이 창작진을 영국에서 구성해서 극본과 음악을 만들고 이미 워크숍 공연을 통해 가능성을 타진한 작품이다. 현재 한국 창작진이 구성되었고 극본과 음악의 번역도 완료되었으며, 배우를 캐스팅하고 있다고 한다. 화려한 비쥬얼이나 스타캐스팅은 없지만 원작의 힘이 살아있는 극과 좋은 음악으로 승부할 예정이다.

뮤지컬 <보이첵> (영국 쇼케이스)

ⓒ LG아트센터

신선함이 익숙함으로 갈 때

  LG아트센터에는 매년 패키지를 구매하고 적극적으로 공연을 즐기는 충성팬층이 두텁다. 하지만 새롭게 소개한 공연들이라도 10년 이상 지나면 레퍼토리에 반복이 생기면서 조금씩 신선함이 퇴색되기도 한다. 초반에는 제3세계의 실험적인 공연들도 많이 소개했는데, 지금은 세계 주류 공연들을 주로 기획하면서 고급문화를 향유하고 싶은 고객층만을 타깃으로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2013년 프로그램에 재공연이나 이전에 왔었던 해외 예술가들이 많아져 초심을 잃어가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들려온다. LG아트센터가 쌓아놓은 공연의 질에 대한 신뢰도가 높기 때문에 관객들의 기대치는 한껏 높다. 이현정팀장의 고민은 이 높아진 기대치를 어떻게 만족시키면서 계속 LG아트센터의 색깔을 유지해갈 수 있을까 하는데 있다.

  “우리 공연장의 주 고객층은 주로 3~40대 인데, 처음 LG아트센터 기획공연이 시작된 2000년에는 20~30대가 가장 많았던 것을 보면 그 분들이 그대로 함께 나이를 먹어 온 게 아닌가 싶다. 그들은 직장에서 가장 바쁜 분들이고, 가장 시류에 민감하고 정보에 빠르면서도 또 한편으론 가장 알뜰하게 공연을 보시는 분들이다. 매년 관객 리서치나 게시판에 올라온 관객들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반영해서 공연이나 편의시설, 티켓제도의 개선 등에 반영하려고 노력한다. 사실 우리 관객들은 기대치가 높아서 조금만 느슨해져도 질책과 비난이 많다. 처음에는 섭섭한 마음도 있었는데 돌이켜보면 그게 얼마나 많은 자극이 되었는지 모른다. 우리 스스로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이 든다. 정말 10년 전에는 말도 안 통하는 곳에 어렵게 찾아가서 작품을 보곤 했다. 그때는 정보를 얻기가 어려워 발로 뛰면서 찾아 다녔는데 지금은 너무 많은 정보들이 들어온다. 가만히 있어도 하루에 몇 개씩 제안이 오고 DVD가 날라온다. 또 이미 소개했던 아티스트들도 계속 좋은 작품들을 제안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까 우리도 프로그램의 신선도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평가에 대해서는 자각을 하고 고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실험적인 작품들, 새로운 작품들을 계속 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우리 상황에 맞게 프로그래밍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특정한 컨셉을 가진 페스티벌이나 소극장이 아니기 때문에 관객 1000명을 데리고 무조건 실험을 할 수는 없다. 실험 정신은 가지고 있지만 작품의 질은 보편성을 지향하는 작품들, 특히 소개하고자 하는 예술가가 비록 소위 말해 주류 집단, 잘 알려진 국가에 속해 있다 하더라도 이들의 작품이 새롭고 신선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면 당연히 초청을 한다. 한번 소개했던 아티스트라도 그들의 작품이 우리 관객들에게 또 한번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다면 초청을 한다.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실험적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작품의 질이다.”

  이현정팀장은 좋은 공연, 관객이 작품에서 문학의 깊이든 새로운 해석이든 무대미술이든 간에 무엇 하나는 느끼고 갈 수 있는 공연을 기획하기 위해 18년간 뛰어왔다. 그녀는 모두가 반대하는 카마 긴카스의 <검은 수사>를 극장장부터 기술 스테프까지 설득하며 초청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이 작품은 무대가 2층 객석에 반쯤 걸쳐 공중에 띄워져 있기 때문에 1천석 중 2층 180석만 객석으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모두 공연공간으로 활용해야 했던 공연이었다. 또한 슬라바 폴루닌의 <스노우쇼>는 한 러시아 배우에게서 우연히 들은 이름만 가지고 연락처와 이메일 주소를 수소문해 3년만에 어렵게 공연을 성사시킨 적도 있다. 공연은 현장성이 있는 예술이기 때문에 혹시 어떤 사고라도 있을까 매일 밤늦게까지 극장을 지키며 관객반응을 점검한다. 이런 집념과 열정은 모두 좋은 공연을 관객에서 선사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LG아트센터에서 공연이 없을 때는 다른 공연장에서 하는 공연도 보러 가고, 새로운 트랜드에 열린 눈과 귀를 갖기 위해서 전시, 영화, 소설 등 다방면의 문화를 끊임없이 접하고 즐기려 노력한다. 이현정팀장은 내년, 내후년에 관객들에게 꼭 선보이고 싶은 공연도 이미 한 가득 준비하고 있었다. 익숙했던 장르보다는 전문기획자에 의해 한번 검증된 공연을 즐기는 재미, 거기서 얻는 무한한 즐거움을 올해 LG아트센터에서 누려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일 듯 싶다.


 

글.강지나 기자 (wingles@hanmail.net)

사진. 윤수경 기자(sky1100@hotmai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