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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끝에서 기다리는 것 <연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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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산의 아픔을 잊지 못하고 아파하는 여자가 있다.

 

그녀를 놓아주고도 잊지 못하는 남자가 있다.

 

연애, 결혼, 사산……이혼 후에도 서로를 벗어나지 못하는 연인,

 

‘에토 하루’와 ‘하야세 리이치로’의 끝나지 않은 ‘연애시대’가 연극으로 다시 찾아왔다.

 

 

 

 

 

 

 

 

 


 

  무대 곳곳에 그려진 붉은 실타래처럼 복잡하고 강렬한 인연, 연인에 대한 이야기다. 아이를 사산 하던 날 곁에 있어주지 않은 남편에 대한 원망과 분노로 결별을 결심한 하루와 자신의 곁에서 불행해지기만 하는 아내를 위해 이혼서류를 작성한 리이치로는 이혼 후에도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며 만남을 지속한다. 무대 위의 소품들은 시시각각 그 모습을 바꾸면서 그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들이 헤어진 후에도 함께 아침을 먹으며 근황을 나누던 도넛가게에서 퇴근 후 친구들과 함께 모이는 술집으로, 서로 첫 눈에 반했던 서점과 그들의 인연이 마지막 선택을 앞두고 달려가는 열차까지. 하루와 리이치로의 추억이 남겨진 공간이, 서로에게 새로운 연인을 소개해주며 상처를 헤집는 공간으로 변할 때마다 아직 사랑하고 있는 이 연인의 결말이 어떻게 끝날지 관객들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된다.

  무대 위의 <연애시대>가 하루와 리이치로의 갈등을 통해 사랑을 확인해가는 과정에 집중한다면, 원작인 노자와 히사시의 소설 <연애시대>는 연애, 결혼, 이혼의 과정 속에서 고민하는 여러 인물들을 통해 사랑의 다양한 형태를 보여준다.


ⓒ 인터파크 플레이 DB

  하루와 리이치로의 시점에서 번갈아 서술되면서, 남녀의 심리에 따라 다르게 감각되는 연애의 형태를 세밀하게 그려낸다. 책 속에서 하루와 리이치로는 주인공이기 전에, 그들을 둘러싼 많은 인연들 – 웨딩드레스를 입은 하루를 보고 반해서 4년간 잊지 못한 나가토미, 남편의 폭력으로 이혼 하고 외로움과 복수심으로 살아온 가스미, 별거하는 아내와의 이혼을 매듭짓지 못하고 방황하는 기타지마, 결혼식까지 올린 리이치로를 두고 떠나야 했던 다미코 – 속에 얽혀 있는 또 다른 인물일 뿐이다. 이렇게 다른 사람과의 사랑을 경험하면서, 하루와 리이치로는 그동안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없었던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진다.

  “있어. 세상에는 그런 사랑 방식도. 나머지는 결과만 좋으면 되는 거야. 과정이야 어떻든 상관없어. 행복해지는 쪽이 이기는 거야.
  “그건 잘못된 거야.
  “뭐가 잘못인데?
  “과정이 잘못된 사랑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가식적일 수밖에 없어. 자식이 독립하고 부부가 노인이 되어 툇마루에 나란히 앉았을 때,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잘못됨이 없었다고 둘이서 자랑스러워하는 사랑이어야 해.

– 소설 『연애시대』中

  소설 속에서 하루와 리이치로는 친구들이 던지는 물음에 직면하며 스스로 묻고 또 묻는다. 우리의 사랑은 무엇이 잘못 된 걸까? 이대로 가도 괜찮을까? 그가, 그녀가 나를 떠나 다른 사람과 행복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과 답 속에서 상대가 행복해지길 진심으로 바라는 건, 전 남편의 결혼식에서 주례를 보는 일도, 전 아내에게 새로운 남자를 소개시켜주는 일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적절한 거리감을 갖지 못하고 상처와 오해만 쌓인 그들의 관계는 이혼을 통해 비로소 ‘연애’를 거쳐 성숙한 ‘사랑’에 도달한다. 무대에서는 다 보여 줄 수 없었던 하루와 리이치로의 내적인 성장이 돋보인다.

  “연애라는 건 좀 이기적인 거야. 제삼자의 행복을 바라고 당장 눈앞의 상대와 올린 결혼이 10년이든 15년이든 행복하게 지속될 수 있다니, 그건 네가 연애를 너무 쉽게 보는 거야.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 눈앞의 상대를 위해 행복해지고 싶다는 이기적인 감정이 아니면 결혼은 오래 지속할 수 없어. 세월이 제 아무리 여과시켜도 변하지 않을 한 점의 이기심을 관철시키는 일이 필요해. ‘너를 행복하게 해줄게.’라는 말 뒤에 ‘내가 해복해지지 않으면 너도 행복해질 수 없다.’는 신념이 따르지 않으면 같은 상대와 반평생을 함께할 수 없는 일이라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 소설 『연애시대』中

 

 

ⓒ 인터파크 플레이 DB

  연극과 소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역시 ‘체험’에 있다. 소설 속에서 가스미의 딸인 아야는 잘 웃지도 않고 여섯 살이라는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성숙한 아이다. 그런 아야가 리이치로를 만나면서 조금씩 웃게 되고, 리이치로에게 아빠가 되어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은 울림이 크다. 아야의 변화뿐만 아니라, 늘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었던 리이치로의 마음에도 변화가 생기는 계기이기 때문이다. 이런 아야의 역할을 연극에서는 관객이 직접 맡는다. 관객 중 한명이 아야가 됨으로써 관객들은 배우들과 함께 호흡하고,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하루와 리이치로의 ‘연애시대’에 직접 뛰어든다. 서로의 감정이 첨예하게 부딪치며 극이 진행될 때, 관객은 구경꾼이 아니라 연애의 당사자로 함께 고민한다.

  극의 마지막에서, ‘여전히 사랑한다고, 다시 시작하자’고 말하는 리이치로에게 하루는 ‘늘 그랬듯이 도망치라’고 소리친다. 사람들에게 상처주면서 행복해질 자신이 없다는 하루에게, 그렇게 도망치고 있는 하루를 위해 이번에 싸우는 사람은 리이치로다. 끝이 어디로 이어져 있는지 알 수 없는 운명의 붉은 실을 쫓아가는 것. 후회와 미련만 남은 과거와 작별하는 것. 대신 현재의 행복과 사랑을 지켜내는 것. 마지막으로 서로를 붙잡을 기회를 얻은 두 사람이 연애의 종착역에서 선택한 답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지라도, 그들의 선택을 민폐라고 몰아붙일 수는 없을 것이다. 눈앞의 상대와 내 자신의 행복을 더 생각하는 일이야말로 ‘연애시대’에 임하고 있는 모든 연인들이 한번쯤 넘어야 하는 산일 테니 말이다.

  ‘연애시대’의 끝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같이 늙어가는 일이다. ‘같이 울고, 웃고, 화내고, 잠들자’는 약속을 지키면서. ‘연애시대’는 끝났지만, 이제야 ‘사랑’을 시작하는 하루와 리이치로의 이야기는 공연의 끝에서 드디어 시작되고 있을지 모른다.


글. 이정민기자 (jmlart2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