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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그리고 악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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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작품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

 

그들에 대한 자기소개 시간,

 

“아이엠그라운드”

 

 


 

 

 

 

  우리는 매일 이야기를 접한다. 가깝게는 일상적인 실화에서부터, 멀게는 가공된 허구까지 그 종류와 범위도 다양하다. 제각각의 이야기들에게 공통점을 찾는 것은 쉽지 않지만, 인내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공통점 하나가 떠오른다. 그것은 바로 주인공과 대립하는 반대 세력 혹은 방해자 ‘악당(혹은 악역)’이다.

 

 

  악당은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인물이다. 주인공을 사사건건 방해하며 갈등을 유발하고, 위기를 조성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주인공과 악당의 팽팽한 적대관계, 라이벌 구조는 극의 긴장감을 유발한다. 주인공은 악당이 만들어놓은 시련과 위기를 극복해가면서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나게 된다. 결국 악당이 얼마나 주인공과 갈등하고, 긴장감 높은 위기를 만들어내느냐에 따라서 주인공이나 이야기가 더욱더 흥미진진해진다.

 

 

  오래된 이야기 속 악당은 뚜렷한 동기나 타당한 이유 없이 주인공을 괴롭히는, 말 그대로 악한 사람으로 설정된 경우가 많았다. 많은 동화 속의 계모들이 자기가 낳지 않은 자식이라는 이유로 주인공을 구박했던 것을 생각해보라.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악당을 찾기는 어렵다. 악당은 날로 세련되게 진화하고 있다.

 

 

  악당은 기본적으로 善인 주인공과 대립하는 惡으로서 설정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악한 모습이 때론 인간이 숨기고 싶은 어두운 면이나, 금지된 욕망이나 갈망을 대변하는 모습으로 그려지며, 착하기만한 주인공보다 더 인간적으로 그려지는 경우도 많다. 이야기 속에 선악의 경계가 점점 더 모호해지면서 과연 선악이란 무엇인지, 또 인간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역할도 한다.

 

 

  이 과정에서 악당에게 악하게 될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세련되게 덧입혀지면서 공감 그리고 연민을 일으키기도 한다. 여기에 주인공과의 대립도 현실성과 개연성이 부가되면서 점점 더 매력적인 악당이 탄생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요즘은 주인공만큼이나 사랑받는 악당이 등장하기도 하고, 아예 악당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만들어지기도 한다.

 

 

  다채로운 악당의 진화 혹은 변화는 극의 재미를 더해주고, 이야기를 풍성하게 해준다. 덕분에 주인공의 역할도 단단하게 만들기도 한다. <아이엠그라운드> 첫 번째 시간에서는 뮤지컬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 악당에 대한 수다를 펼쳐보았다.

 

 

 

 

Talking about #1

 

악당, 그들은 누구?

 

 

 

[루시] 와우. <아이엠그라운드> 그 첫 번째 시간. 오늘의 주제는 바로 ‘뮤지컬 속 악당’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주제는 정하기는 했는데, ‘악당’하니까 너무 광범위한 것 같아요. 악당? 악역? 다 같은 의미로 써야할까요?

 

 

[엠마] 우선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악당’의 정의를 명확하게 시작하는 편이 좋겠어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악당은 ‘주인공과 정반대 위치에서 주인공과 대립하는 인물’이 정도 정의가 맞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주인공과 같은 목적-그게 사랑이든, 돈이든, 권력이든-을 두고 경쟁, 대립하는 사람.

 

 

[루시] 아, 간단하게 주인공 인생 방해자? 뮤지컬의 주요 사건을 유발하는 사람?

 

 

[엠마] 네. 그 정의가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악당이나 악역이 맞는 것 같아요. 가장 악당의 전형적인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선악의 대비가 분명한 영웅서사에서 쉽게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영웅의 대표적인 역할이 악당을 물리치는 것이니까, 악이 분명하지 않으면 영웅도 없겠죠?

 

 

[루시]최근에 공연했던 공연 중에 아주 명확한 영웅 서사는 <스칼렛핌퍼넬>이었어요. 여기서 악당 역할은 ‘쇼블랑’이 하고 있어요. 쇼블랑은 잘못된 믿음이나 권력 때문에 악당이 된 것 같아요. 극에서 마그리트와 사랑을 하게 된 것도 두 사람이 순수하게 혁명을 꿈꿨던 시기였잖아요. 그렇지만 그 후에 그가 변했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나요?

 

 

 

 

 

[엠마] 그렇죠. 처음엔 순수했는데. 변질된. 어쩌면 프랑스 시민혁명을 상징하는 인물이 쇼블랑 자체가 될 수도 있겠네요. 그런 면에서 보면 쇼블랑은 시대의 광기가 만들어낸 악당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런데 행동으로만 보면 쇼블랑이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전형적인 악당이죠. 막 자기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사랑했던 여자도 이용하고!

 

 

[루시] 아, 맞다! <삼총사>의 리슐리외! 진짜 악당 중의 악당! 목표가 권력이죠. 그것도 여자를 이용하고, 친형을 제거하고. 물론 쌍둥이라는 설정에 왕이 되지 못한 열등감이라는 동기가 있지만, 행동이 너무 극단적이고 과격하죠. 게다가 성직자라는 설정도 악한 모습을 더욱 부각시켰고요. 동정심의 여지가 없는 악당이에요.

 

 

 

Talking about #2 

 

미워 할 수 없는 악당 vs 미운 악당

 

 

[루시] 리슐리외도 우리가 생각하는 악당의 전형적인 모습이죠? 역시 영웅과 악당, 선과 악이 분명한 영웅서사에서 악당이 쉽게 찾아지네요. 근데, 방금 전에 ‘동정심의 여지가 없는 악당’이라고 하셨잖아요. 그 반대로 악당이긴 한데 나쁜 놈이라고 손가락질하고 미워하기엔… 좀 미워할 수 없는 악당도 있지 않나요?

 

 

[엠마] 맞아요. 악당이 사건의 전개를 위하여 정말 기능적으로만 쓰였는지, 아니면 악당 캐릭터 자체에도 충분한 설득력이 부여되고 입체감이 있는지, 차이 같아요. 미워할 수 없는 악당이라는 건 후자에 해당하고요. 즉, 악당한테 충분한 설득력이 부여된 경우에만 나올 수 있는 얘기가 아닐까요?

 

 

[루시] 오! 고급스러운 정의다! 동감이에요. 그런 면에서 보면 때론 악당이 주인공 보다 더 매력적일 때가 많아요. 여자들의 로망 나쁜 남자랄까?! 사실 악역들이 주인공들 보다 더 열정적이고, 목표 지향적인데다, 추진력도 있고, 거기에 카리스마…….

 

 

 

 

 

[엠마] 아이고~, 여기서 정신줄 놓으시면 안 됩니다~(웃음). 여자의 로망일지는 모르겠지만, 미워할 수 없는 악당하면 <몬테크리스토>의 몬데고가 가장 먼저 떠올라요. 나쁜 짓을 하고 다닌 건 분명한데, 그 원인을 살펴보면 그가 다 사랑 때문이어서 미워할 수 가 없어요. 악당인 동시에 순정남이랄까. 비록 조금 나쁘긴 했지만 행동의 동기가 메르세데스를 향한 사랑으로 너무 분명하잖아요. 게다가 호구에 플러스 비극적 최후까지!

 

 

[루시] 아들까지 키워줬는데!

 

[엠마] 근데 그 아들이 친아빠가 나타나니까 자기를 죽여!

 

[루시] 이래서 아들 놈 키워봤자 소용없다는 소리가…(웃음),

 

[엠마] 몬데고 입장에서 이런 배은망덕이 없는 거죠! 아, 그러고 보니 몬데고랑 비슷한 인물이 생각나는데 <아르센 루팡>의 레오나르도가 있어요.

 

[루시] 아… <루팡>! 그건 작품이 악당 아닌가요?

 

 

[엠마] <루팡>에서 레오나르도랑 조세핀이 사랑하는 사이인데, 그 둘이 범죄를 저지른 걸 루팡한테 뒤집어 씌워요. 레오나르도는 조세핀을 너무 사랑해서 조세핀이 하라는 대로 다 하죠. 살인이든 뭐든. 그런데 조세핀은 성공하기 위해 레오나르도를 죽여요!

 

 

[루시] 아니! 레오나르도가 악당이 아니라 조세핀이 악당이잖아요!

 

 

[엠마] 조세핀은 진짜 순도 100% 악당이고, 레오나르도는 약간 호구 악당 느낌? 몬데고 보다 레오나르도가 더 호구. 완전 호구 중의 호구. 시키는 건 다해요 살인도 막하고!

 

 

[루시] 앗! 호구 악당의 서열이 바뀌는 순간이네요~, 두둥!

 

 

 

 

 

[엠마] <조로>의 라몬은 몬데고랑 비슷한 것 같아요. 라몬은 자기가 가지지 못한 친구의 권력을 탐하고,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가 자기 친구를 좋아하니까 친구에 대한 열등감까지 더해져서 권력을 침탈한 폭군이 되죠.

 

 

[루시] 아들도 키워주나요?

 

 

[엠마] 라몬은 호구가 아니랍니다~(웃음). 나쁜 통치자가 되어서 마을 주민들이 힘들어하죠. 그래서 조로가 돌아와서 라몬과 대립하고, 라몬은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 루이자를 인질로 삼아요.

 

 

[루시] 결정적인 순간 찌질하게 나오는군요. 몬데고가 훨씬 낫네요.

 

[엠마] 몬데고가 조금 더 순정남이에요. 라몬이 악당이 된 동기는 사랑 때문만이 아니라 거기에 약간의 권력이 결합한 것 같아요.

 

 

[루시] 음, 악당들이 ‘악’하게 된 동기가 공감이 갈 때는 완전하게 미워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사랑이라는 감정은 대부분 가져보는 감정이잖아요. 그렇다보니까 나쁜 놈이 되어서까지 사랑을 얻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하지만 권력에 대한 욕심은 좀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일상에서는 일어나지 않…… 않죠? 그렇죠?

 

 

 

Talking about #3

 

이질적인 악당 그리고 악당의 존재감

 

 

[루시] 그런데 앞에서 이야기한 악당들은 어떤 동기나 이유가 있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동기가 없는 악당도 있을까요?

 

 

[엠마] 동기가 없는 악당하니까 생각나는 게, <글루미데이>의 사내. 이 사내의 실체에 대해서 의견이 정말 분분했는데, 그 사내는 저는 현실인물이 아니라고 봤거든요. 텍스트 상에서는 둘을 조종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려고 치밀하게 계획을 짜요. 그리고 주인공이 그 사내에 대해 조사하니까, 그 사내가 맺어준 커플들이 다 자살했다는 그런 얘기도 나오고……. 좀 비현실적인 존재로서 섬뜩한 느낌이 들었어요.

 

 

 

 

 

[루시] 전 작품을 보지 않았지만, 왠지 절대악? 그런 느낌인데요?

 

 

[엠마] 네! 도저히 사람이 할 수 없는 정도의 수준 높은 조종을 해야 해서 저게 실제 인물이라면 너무 뻥이 심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그냥 그 당시 사회 관습이 인물화 된 캐릭터로 봤어요. 둘의 사랑에 가해질 갖가지 사회적 제약들을 사내라는 인물로 표현한 게 아닌가 뭐 이런 생각. 그래서 순수한 악의 화신 같아요. 왜냐면 동기가 전~혀 없거든요. 그냥 사탄의 인형 같아요. 정말 그 악의 존재감이 대단해요.

 

 

[루시] 저는 존재감이 강한 악당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레베카>예요.

 

[엠마] 댄버스 부인?

 

 

[루시] 댄버스 부인이 ‘나’와 대립하고 갈등하고… 뭐 그런 의미에서는 악당이긴 하지만 <레베카>에서 진짜 악당은 레베카인 것 같아요. <레베카>의 모든 이야기, 갈등의 시작이 레베카에요. 극을 통해 실체를 드러내는 그녀의 비밀도 어마어마했고. 죽어서도 살아있는 사람들을 지배하는. 비현실적인 악당이에요.

 

 

[엠마] 심지어 레베카는 무대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데! 그 이름 하나만으로 존재감 끝판왕! 근데 극이 잘 만들어지고 설득력을 주기 위해서는 악당도 심도 있게, 입체적으로 그려야 하는 것 같아요. 악당 캐릭터가 단순할수록 서사가 유치해지기 쉽고, 또 너무 뻔해서 재미가 없을 때가 있어요.

 

 

[루시] 맞아요. 정말 잘 만들어진 악당은 단순히 그 역할만 빛나는 게 아니라, 주인공이나 작품까지 빛나게 만들어주거든요.

 

 

[엠마] 그런 의미에서 음… <피맛골연가>의 홍생은 딱히 매력적인 모습이 없었던 악당이었던 것 같아요. 자신의 잘못이 드러날까 봐 은생을 죽이고, 그 때문에 결과적으로 은생과 홍랑의 사랑을 이룰 수 없었죠. 어떤 이기적인 동기를 갖고 주인공을 괴롭히고, 극의 갈등을 유발하는 등 악당의 역할은 하고 있지만 딱히 인상적인 모습은 아니었어요. 홍생은 정말 딱 기능적으로 쓰인 악당이라고 할 수 있어요.

 

 

 

Talking about #4

 

악당의 변화

 

 

[루시] 최근엔 인물들이 단순하지 않잖아요. 그러니 딱 자르기가 쉽지 않아서 순순한 의미의 악당을 찾을 수 없는 것 같고.

 

 

[엠마] 네. 어쩌면 선과 악을 보는 시선이 예전과 달라져서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전에는 대체로 이야기들이 ‘권선징악’이라는 결론이 많았잖아요. 선한 것만이 정답으로 취급받았다고 할까요. 그렇지만 꼭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렇진 않잖아요.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악한 구석이 있고, 또 착하게 사는 사람이 오히려 불이익을 당하기도 하고. 그런 시각의 변화가 아무래도 이야기 속 악당에게도 영향을 끼친 것 같아요.

 

 

[루시] 동감이에요. 그래서 작품 속에 악당이라고 할 만 한 인물이 등장하지 않거나, 아니면 악당이 어떤 실체가 있는 인물이라기 보단 사회나 시스템 같은 것이 악당처럼 보일 때도 있어요. 최근에 본 <에비뉴큐>, <어메리칸이디엇>를 보면서 사회가 악당이다 싶은 생각을 많이 했어요.

 

 

 

 

 

[엠마] 그런 경향을 잘 보여주는 예를 들어보면 <위키드>! 우리가 알고 있던 오즈의 마법사의 선악 구조를 뒤집어 놓은데다가, 그 작품 속을 잘 보면 선한 동기가 꼭 선한 결과를 만들어내지 않거든요. 끝까지 착한 사람도, 끝까지 나쁜 사람도 없어요. 물론 작품 속에서 주인공과 대립하는 인물이 등장하기도 하고, 또 악당이라고 부를만한 인물도 나오지만, 기존의 이야기 속에 선악의 개념이 기존하고 많이 다른 것 같아요.

 

 

 

Talking about #5

 

나가기

 

 

[루시] 악당하면 그냥 나쁜 사람 이정도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야기를 해보니까 생각보다 다양하네요. 악당 이야기를 시작할 때는 사실 뮤지컬 속에 악당이 많이 등장하니까, 이야기하기 쉬울 줄 알았는데 쉽지 않네요(한숨).

 

 

[엠마] 맞아요. 게다가 언급조차 하지 못했던 악당들도 너무 많고요! 작품을 보면서 흔하게 접하던 역할들을 한번 다시 생각해보니 재미있었어요. 아, 이건 저만 재미있었던 건가요? 그러면 안 되는데(웃음).

 

 

[루시] 독자들도 재미있어야 할 텐데…. 음…이제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 될 것 같은데….

 

[엠마] 음, 이건 어떨까요? 오늘의 결론! 순수악은 레베카와 사내에게, 호구는 몬데고와 레오나르도에게! 끄으읕!

 

 


 

 

글. 박초희, 최영현 기자

  • hy

    ^^ 무지 재밌게 읽고 갑니다..

  • 날개

    앞으로 작품 속 악당이 나오면 더 세심히 봐야겠어요^^ 전 언제나 악당에게 끌리는 편인데~ㅎㅎㅎ